'역사의 빈칸' 여성 독립운동가들…기억하려면?
[EBS 뉴스]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지 80년이 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EBS 뉴스는 역사에서 누락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기획보도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온전히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영상 보시겠습니다.
[VCR]
올해 기준 여성 독립운동가 664명
전체 1만 8천여 명 가운데 3.6%
객관적인 기록 있어야 독립운동 인정
남성 중심의 기록에 여성들은 소외
인터뷰: 한상권 / 덕성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사실은 1만 8천여 명의 독립운동가가 다 여성의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한 거죠. 그분들의 옷은 누가 꿰맸고 밥은 누가 해줬고 그분들의 자식은 또 누가 키웠고."
2018년 서훈 기준 바뀌었지만
여전히 높은 '기록 중심' 평가
잊혀진 절반의 역사, 여성 독립운동가
광복 80년 맞은 우리가 나아갈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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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앵커
여성 독립운동가라는 역사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네, 현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여성의 비율이 3% 남짓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
한 10년 전만 해도 1% 남짓이었는데 그래도 3%까지 올라갔으니까 많이 올라갔습니다.
역사를 흔히 히스토리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영어로.
그래서 이제 일부 역사학자들은 히스토리가 너무 남성 중심의 냄새가 풍기니까 히스토리를 허스토리로 바꿔야 된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역사가 전반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고 남성 중심으로 해석돼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여성이 한 역할, 한 여성으로서 한 독자적인 역할에 대한 조망을 제대로 못 했죠.
그러다 보니까 여성 독립운동가가 굉장히 많았는데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상미 앵커
네, 이 여성들이 할 수 있었던 독립운동의 고유한 영역도 있었을 텐데요.
이들은 주로 어떻게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까?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조직도 만들어서 조직 활동도 하기도 했는데 상대적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여성의 숫자는 적습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역할은 뭐였냐 하면 독립운동을 하는 분의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딸로서 밖에서 활동하는 남성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남자들이 밖에 나가서 독립 운동할 때 집 안에서 여성이 하는 도움이 없었으면 독립운동이 불가능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런 여성의 역할, 여성이 한 일도 넓은 의미에서 독립운동으로 인정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목소리가 한 지난 10여 년 전부터 나왔고요.
그거를 이제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그걸 받아들여서 일부 여성 독립운동가의 아내나 며느리를 독립 유공자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숫자는 미미한 수준인 거죠.
이상미 앵커
네, 지금까지 잊혀져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여가 좀 앞으로는 반드시 인정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
흔히 뭐 이 지구의 절반은 여성 절반은 남성이라고 하는데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다르다는 측면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여성이 하는 역할을 남성이 하는 역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는데 그런 시각을 극복을 해야 되고요.
뭐 흔히 요즘 뭐 성평등, 성평등 그러는데 21세기에 맞는 성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한 독특한 역할도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학생들한테 가르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 10명만 대보라고 그러면 심지어는 사학과 학생들도 10명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못 댑니다.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런 것들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상미 앵커
네, 선생님께서는 한국광복군 지청천 사령관의 손자이기도 하면서 또 여성 독립운동가 윤용자 또 지복영의 후손이기도 하십니다.
이분들이 어떻게 활동을 하셨는지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
저희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인 지청천 장군이 만주에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할 때 어린 세 자녀를 키우는 일을 주로 하셨습니다.
1930년대 후반이 되면 세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됐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집안에서 자녀를 키울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자녀를 키우는 동시에 당연히 남편이 독립 운동할 때 가사, 그 가정을 돌보지 않으니까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셨고요.
자녀가 다 성장하고 난 다음에는 당신이 직접 독립운동에 투신하셔가지고 임시정부 계열의 단체에서 이제 활동을 하셨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그나마 좀 나이가 든 다음에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한 공적이 인정돼서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전에 활동, 그 이전에 한 일, 그러니까 남편을 남편을 도운 일 또는 남편이 못하는 역할을 집안에서 한 일 이런 것들도 모두 넓은 의미의 독립운동으로 인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저희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분 독립운동가의 아내들도 저희 외할머니와 똑같은 대우를 정부로부터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저희 어머니는 그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셨는데 당신이 원하는 교육은 제대로 못 받으시고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히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중등 교육까지는 받으셨는데 중등 교육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그냥 개인의 욕구를 추구하기보다는 빨리 독립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의 여성으로서 군복을 입고 입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치면 영관급 장교로 활동을 하셨고요.
저희 외할머니나 어머니는 그래도 역사의 이름을 남기셨습니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됐기 때문에 그런 저희 외할머니나 어머니 외에도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빨리 기릴 방법을 찾아내야겠죠?
이상미 앵커
네, 이렇게 기록에 남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동시에 또 이 독립운동가로 인정하는 기준도 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선 발굴을 위해서 정부와 민간이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요?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
당연히 그 남겨진 기록을 더 많이 찾아서 그 기록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을 텐데요.
지금까지와 똑같은 기준으로 독립운동을 바라보면 그러니까 독립유공자 서훈을 바라보면 여전히 여성 독립운동자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똑같은 시위를 벌이더라도, 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더라도 남학생은 상대적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옥고를 치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일제가 웬일인지 좀 관대한 처분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기록으로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옥고를 덜 치르니까 독립유공자 서훈에서도 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좀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서 좀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록을 찾아내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좀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미 앵커
네, 우리가 이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좀 다음 세대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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