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도시 파주, 첫 장 넘겨... 문화예술도시 펼치다 [창간 37주년, 파워 경기]
YS정부 때 출판문화산단 확정, 1997년 파주에 둥지
2002년 입주 시작... 영상·미술 등 다양한 업종 확대
현재는 연 100만명 방문객 찾는 ‘복합문화공간’ 성장
‘디지털 전환’ 화두 속 종이책 열풍 이끌며… 변화 꾀해

■ 책 문화의 지원군 파주출판도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의 수치는 매년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자료에서도 ‘최근 10년간 종합 독서율 추이’는 2013년 72.2%에서 2023년 43.0%까지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수치와는 별개로 시대적 흐름 속 책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6월18일부터 5일간 진행된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주최 측 추산 관람객 15만명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폐막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흥행에 출판계는 고리타분하게만 여기던 책을 즐길거리로 접하는 인구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눈치다.
독서율 지표가 다 담지 못하는 출판계의 변화, 책이 독서를 즐기는 소수의 것이 아닌 삶의 일부이자 문화의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 데에는 ‘파주출판도시’를 빼놓을 수 없다.

■ 출판산업의 집약... 책의 도시
“식민지라는 황무지, 전쟁이라는 초토, 군사정권들의 궐기에서 ‘출판’은 감시의 대상이고 불온한 집단들로 여겨졌습니다.”
202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에서 지식산업사 김경희 대표는 역사 속 출판계 인식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출판이 무슨 산업이냐며 예술의 한 귀퉁이에서 예술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비합리적이고 비문화적인 조치에도 출판인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고, ‘책을 잘 만들어야 나라가 온전하다’는 믿음은 출판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출판업은 지류, 인쇄, 제본, 출판, 유통 등 이업종의 결합으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파주출판도시가 생기기 전까지 인쇄와 제본은 을지로, 출판사는 마포, 유통을 담당하는 총판은 곳곳에 흩어져 있어 출판인들은 저마다 비용과 효율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도서출판 동녘의 이건복 대표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련 업종이 가까운 곳에 모이면 비용이 줄어든다는 경제적인 이득을 논하기 전, ‘공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번듯한 공간에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한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화체육부에서 출판문화산업단지에 대한 세부계획을 확정 발표함에 따라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파주로 지역이 확정되고 1997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 및 개발계획이 승인되면서 출판인들의 막연한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건복 대표는 “사업 초기에 내정됐던 지역 일산이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혼란이 있었지만 ‘파주’라는 터가 정해진 것은 출판도시 형성에 큰 틀을 갖추게 된 계기였다”며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것도 파주라는 지역의 의미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2003년 출범한 출판도시문화재단은 파주출판도시가 출판인들만의 것이 아닌 독자, 더 나아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예술도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립됐다.
재단 소속 오은지 기획홍보팀장은 “파주출판도시는 연간 약 100만명의 방문객이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며 “파주출판도시의 초기 비전인 ‘출판산업의 집적화’와 ‘책의 도시’라는 목표가 실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폐업한 인쇄소 보진재가 2002년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한 이후 이듬해인 2003년 책의 도시 탄생을 알리는 첫 기념 행사로 ‘제1회 파주어린이책한마당’(현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을 개최했다. 파주출판도시가 단순히 산업지구로 그치지 않고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편히 놀러와 쉬며 책을 접할 수 있는 살아있는 도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린이 행사를 가장 먼저 기획했다. 이건복 대표는 “‘공간이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는 말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며 “담을 만들지 않고 4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않도록 제한한 것도 인간 중심의 동네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세운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 ‘콘텐츠’가 꽃피우는 파주 ‘문화예술’도시
출판계에도 ‘디지털 전환’의 화두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2012년 국내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전자책은 당시만 해도 지류·인쇄업의 존폐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의 출판계는 취향에 따라 전자책과 종이책이 양립하는 구조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5년간 산업단지를 넘어 문화지구로 각인돼 온 파주출판도시는 앞으로 보다 확장된 복합문화예술도시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오은지 팀장은 “파주출판도시가 나아갈 이상적인 방향은 출판을 기반으로 한 복합문화예술도시”라고 말했다. “창작자, 출판사, 제작자가 협력해 매일같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태어나고 시민과 방문객이 책과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며 “민간 주도로 조성된 파주출판도시가 공공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재원 확보 방안을 연구해 장기적으로 출판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건복 대표는 “출판의 영역을 ‘책’으로 한정짓지 않고 ‘콘텐츠’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출판단지에는 영상, 영화, 미술(디자인) 등 다양한 문화예술 업종이 입주해 있다”며 “출판업계 이업종들을 모아 출판도시를 꿈꾼 것처럼 문화예술인들이 교류하는 파주‘문화예술’도시로 나아가자는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A. 벌써 한 세대가 지났다. 책 중심의 출판도시를 많은 시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찾도록 만든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직 100%는 아니지만 300여개 출판 관련 업체들은 입주를 거의 끝마쳤다. 159만㎡(48만여평)의 땅에 책 중심 도시를 만들고 가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좀 그 꼴을 갖춘 것 같다.
Q. 파주출판도시 조성 당시 주안점을 둔 부분은.
A. 이 도시를 만드는 과정을 책 만드는 것에 대입했다. 동네를 어떻게 구성할지, 건물을 어떻게 지을지 책을 기획하듯 논의했고 목차를 떠올리며 출판단지 섹션을 나눴다. 어떤 저자에게 이 기획이 적합할지 고민하듯 건축가 집단을 구성해 건물을 올린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위한 마을이니 책을 만들 듯 떠올리며 도시를 구성했다.
Q. 출판도시를 만드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A. 크고 작은 고비는 많았지만 출판사를 비롯해 회사 운영에 가장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교통 문제였다. 합정에서 파주로 들어오는 버스 노선이 생기고 나선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회사 이전이 개인의 이사 문제와 겹쳐 쉽지 않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파주출판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자연 수로와 관련된 일이다. 9만9천㎡(3만여평)이나 되는 수로를 메우면 분양 면적도 넓어지고 그만큼 비용 부담도 줄어들었지만 수로를 살리자는 의견이 더 컸다. 출판은 생산이기도 하지만 결국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자 수로만은 그대로 두자 싶었다. 결과적으로 여전히 때마다 파주를 찾는 철새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Q. 앞으로 젊은 출판인들에게 파주출판도시가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나.
A. 뒤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이 도시를 만드는 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우리 세대는 ‘집단’에 익숙하다 보니 뜻을 모으는 데 수월한 편이었지만 그만큼 거칠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훨씬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이 공간을 꾸려나갈 거라 확신한다. 출판의 폭을 넓혀 더욱 다양한 문화콘텐츠 창작 집단이 맘껏 꿈을 펼치기 바란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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