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픽!] “춘천신사 스사노오 제의, 내선일체 통치 수단으로 기능했다”

이채윤 2025. 8. 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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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춘천 봉의산에 신사를 건립, 제의 대상에 신화 속 존재인 스사노오를 추가한 이유를 밝히는 강연이 춘천에서 열렸다.

이날 특별 강연으로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일본 신화의 스사노오와 춘천 신사'를 주제로 일본 식민통치의 논리를 밝혔다.

신궁은 건립되지 않았으나 일본인들은 춘천신사에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를 추가했고, 이후 춘천신사가 강원신사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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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 강연
▲ 국립춘천박물관(관장 이수경)이 14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 강연 ‘광복 80주년, 강원을 다시 보다’를 열었다. 이채윤 기자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춘천 봉의산에 신사를 건립, 제의 대상에 신화 속 존재인 스사노오를 추가한 이유를 밝히는 강연이 춘천에서 열렸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지난 14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 강연 ‘광복 80주년, 강원을 다시 보다’를 열었다. 이날 특별 강연으로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일본 신화의 스사노오와 춘천 신사’를 주제로 일본 식민통치의 논리를 밝혔다.

이날 장 교수는 “1930년대 스사노오 신궁을 만들겠다는 운동이 퍼지고 스사노오가 쫓겨난 곳인 ‘소시모리’가 소의 머리 즉, 춘천 우두(牛頭) 지역으로 여기는 이들이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의 ‘단군’이 일본의 ‘스사노오’와 같다는 논리를 펼치며 춘천에 신궁을 건설하려 했다는 것도 설명했다. 신궁은 건립되지 않았으나 일본인들은 춘천신사에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를 추가했고, 이후 춘천신사가 강원신사로 승격됐다.

▲ 국립춘천박물관(관장 이수경)이 14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 강연 ‘광복 80주년, 강원을 다시 보다’를 열었다. 이채윤 기자

김 교수는 “신사 참배의 본질은 일왕 숭배였다. 일본은 스사노오 이론을 한국에 편입해 내선일체 사상을 강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1937년 미나미 지로 총독 부임 이후 일본은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한국이 일본과 같다는 주장을 강화했다. 한국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을 뿐, 일본과 하나라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단군’이 일본의 ‘스사노오’로 같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지배하고자 했다.

장 교수는 “1943년 내선일체의 성지이자 상징으로써 스사노오 신궁 건설 운동이 일었고, 춘천과 강원이 내선일체론의 중심지가 됐다”며 “다만 전쟁이 이어져 춘천 스사노오 신궁이 건설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헌주 국립한밭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도 이날 ‘관동창의군 활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었다. 김 교수는 강원 지역에서 결성된 의병부대인 관동창의군의 활동과 역사적 의미를 알렸다. 이들이 있었기에 지속적인 독립 운동이 이어질 수 있었고, 지역적인 항일의병 활동이 이뤄졌다는 취지다. 이날 강연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박물관 관람객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가 우리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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