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주의 오프] 조국 사면에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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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세상 가설'이라는 사회 심리학 개념이 있다.
한국에서 이 가설이 집단적으로 부서진 결정적인 순간은 아마 2019년 조국 사태일 것이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공정한 세상 가설'이 있다면 반대로 '불공정한 세상 가설'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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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세상 가설'이라는 사회 심리학 개념이 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공정하다고 믿는 인지 편향이다. 노력한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지리라는 인과응보의 믿음이다.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모두 개인에게 떠넘기는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신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 가설이 집단적으로 부서진 결정적인 순간은 아마 2019년 조국 사태일 것이다. 엘리트 계급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편법도 아니고 불법을 동원했다.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조국백서)이라는 옹호도 나왔지만 반칙은 반칙이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징역 2년이 확정된 지 8개월 만이다. 벌써 차기 대권주자라는 식의 표현도 나온다. 조 전 대표의 두 자녀는 1991년생, 1996년생이다. 1994년생인 나는 얼추 그들의 또래다. 동년배로서 6년 전 조국 사태 때 얼마나 격분했는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실망하고 착잡하긴 했지만, 선 자리가 너무 멀면 화도 나지 않는다.
내가 다녔던 인천의 공립고등학교는 교육열이 높은 곳이 아니었다. 입시 준비도 거의 모든 학생이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구분 없이 그저 일단 내달리는 식이었다. 논문 작성이나 인턴 같은 스펙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때 알았다고 한들 조민처럼 따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2019년 8월 조국 사태가 막 벌어졌을 때, 대학생이던 나는 아예 기대를 접고 체념하는 쪽이었다. 애초에 공평한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없으니 상대방의 반칙이 드러났을 때 분하지도 않았다. "생각도 못해본 갖가지 방법이 다 있구나" 정도. 시간이 흘러 조국 사태를 돌아볼 때 처음 느끼는 감정은 이런 무기력과 서글픔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이 있다면 반대로 '불공정한 세상 가설'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운발'이라서 믿고 따를 규범 따위는 없다는 냉소주의다. 두 가설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곳에선가 공정의 이름 아래 특권이 대물림될수록, 배제된 이들은 사회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이 미치는 영향이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기에, 어떻게든 떵떵거리고 잘살면 된다는 신호다. 본래 특권에는 수치심이 동반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거꾸로 반칙과 특권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며 굴욕을 느낄 지경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계층 이동의 문이 좁아질수록 이런 물신주의와 결과 만능주의는 더 커질 것이다.
조 전 대표 측도 나름의 억울함이 있기야 할 것이다. 온 가족이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들보다 더 중범죄를 저지른 정치인도 사면됐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다 박해받았다 말할지도 모른다. 생각은 자유다.
다만 그게 국민이 모욕감을 느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조 전 대표는 자신의 유죄 항목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사면·복권을 받고 '다 끝난 일'이라는 식으로 뭉개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조 전 대표가 지향하는 정치가 무엇이든, '내 새끼 챙기기'가 지상과제가 된 세상에서는 의미가 없다. 코스피가 5000이 되든, 검찰 개혁이 이뤄지든 마찬가지다.
[박홍주 컨슈머마켓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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