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픽!] “역사 부정하는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광복 80주년에 다시 읽는 박경리 ‘일본산고’

김진형 2025. 8. 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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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작가의 생전 모습. 서재에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일본에 관하여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일부 참신한 지식인들 귀에는 사양의 만가(挽歌)쯤으로 들리는 모양이고 민족주의자의 촌스러운 몸짓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것은 과거 강자의 논리가 아직 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1926~2008·본명 박금이)작가는 20년 가까이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그의 대하소설 ‘토지’는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작가에게 일본은 아픈 기억이자 굴레였으며, 분석과 극복의 대상이었다.

8월 15일은 한국인들에게는 광복의 날이자, 일본인들에게는 패전의 날이다. 1994년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가 완간된 날이기도 하다.

광복 80주년과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은 지금의 시점에서 박경리 작가의 유고 산문집 ‘일본산고’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책의 부제는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이다.

2013년 일본산고가 처음 출간됐을 때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다”라는 작가 박경리의 발언은 한국 사회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본인들의 반성과 성찰의 문제는 양국의 현재진행형 문제로 남아있다.

일본산고에는 작가가 생전 일본에 관해 쓴 글들이 모여있다. 두 나라의 갈등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의 논리를 넘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맞닿아 있다.
 

▲ 박경리 유고 산문집 ‘일본산고’

‘반일작가’라는 단순히 원체험에서 비롯된 감정적 태도로만은 볼 수 없다. 서재에 켜켜이 싸여 있는 일본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명쾌한 분석을 남긴다.

“일본인에게 예를 차리자 말라”라는 말은 박경리 작가가 일본 지식인 다나카 아키라와의 논쟁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을 읽고 박경리 작가가 자발적 투고를 통해 정면 반박한 글인데, 오늘날 한일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이승윤 문학평론가는 “일본 지식인이 바라보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논리적 비약과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며 “박경리에게 일본론을 집필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명이자 책임이었다”고 했다. 작가의 역사의식으로 직조한, 공동체에 전하고 싶은 ‘일본 사용 설명서’였던 셈이다.

조선, 만주, 타이완을 ‘반환’했다는 말 대신 ‘잃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서부터 작가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설명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고, 역사를 현재와 무관한 것으로 방편적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한국의 분노가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다.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되기에 작가는 ‘반일작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 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일본문화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게 이어진다. 일본 문학 중에는 구성이 치밀하고 뛰어난 묘사력, 세련된 문장 등 대단히 우수한 작품이 있으나 주제가 약한 것이 전반적인 경향이라고 지적한다. 그 저변에는 ‘괴기’와 ‘탐미’의 속성이 있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이나 ‘지옥변’은 “출구가 없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다시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와의 논쟁으로 들어간다. 8·15 즈음에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을 쓴 다나카 아키라는 “통속민족주의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의 품위가 떨어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며 “지금 사람들은 피지배·피억압의 역사를 우겨대면서 지칠 줄 모른 듯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식민지 지배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측이 반론할 수 있는 여지는 전연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사람은 안심(?)하고 마음껏 일본을 공박할 수 있다”고 글을 남겼다.

이에 대해 박경리 작가는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반박글을 남긴다. 그와 같은 일본인이 있기에 반일을 한다는 것이다.

박경리 작가는 “아직도 그는 식민지 시대의 지배자로 자신들을 착각하고 있는가. 문장의 행간마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가 희번덕이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거칠 것 없이 남의 팔다리 잘라놓고 뼈 마디마디 다 분질러놓고 제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피 한 방울 흐르는 것을 보는 순간 새파랗게 질리면서 ‘아파! 아파!’ 하고 울부짖는 형국이다. 맙소사 이런 정도를 못 견디어 하는 증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작가는 다시 말한다. “나는 일본의 양심에 기대한다. 전쟁의 책임이 천황에게 있다 하여 테러를 당한 시장이라든가 왜곡된 자기 저술을 바로잡기 위해 재판을 건 학자라든가.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그런 양심이 많아져야 진정한 평화를 일본은 누릴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편 15일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는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 완간 31주년을 기념하는 ‘토지의 날’ 행사가 열렸다. 김연숙 경희대학교 교수가 ‘해방된 것은 나라였을까, 인간이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김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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