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오이지,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2025. 8. 15. 1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자랑하고,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나는 가만히 가늠해 본다.

그 사랑들은 나를 더욱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하고, 또 지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내가 받아온 모든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진 것은, 모두 시인 덕분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지은 에세이집 '우리의 여름에게'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에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하는 기사를 쓰게 되어 이 책 저 책을 뒤지던 중이었다. 이미 읽은 책 말고도 새로운 목록을 넣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여름에 읽기 좋은 책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때 친구 한 명이 추천한 책이 바로 최지은 시인의 에세이집 '우리의 여름에게'다.

호기심이 동해 다음 날 주문을 하려니, 이미 1년 전에 구입한 적이 있는 책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책장을 뒤지니 잘 보이는 자리에 꽂혀 있었고 덕분에 금세 찾아냈다. 아마 예전에도 누군가에게 추천받아 사두고는 잊은 듯했다. 접힌 페이지는 하나도 없었지만 어쩐지 표지만은 내가 이미 오래도록 아껴둔 책처럼 익숙했다. 한낮의 여름 햇빛을 받으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첫 챕터를 다 읽기도 전에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 작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첫 챕터의 내용은 이렇다. 좀체 밥을 잘 먹지 않는 손녀가 오이지에 밥을 싹싹 긁어먹자, 할머니는 그날부터 매 끼니 밥상에 오이지를 올린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할머니는 손녀에게 더 아삭한 오이지를 먹이고 싶어 끓인 소금물에 오이지를 절이려다 화상을 입는다. 그 화상 때문에 할머니는 그해 여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손녀에게 더 맛있는 오이지를 먹이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이라고 적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 문장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 마음은 어디서도 쉽게 마주하지 못한, 혹은 마주쳤더라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해 지나쳐버린, 아주 단단하고 유연한 사랑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최 시인은 내내 그런 사랑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단지 들여다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모두에 나눠주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의 여름에게·최지은 지음·창비 발행·184쪽 1만4,000원

나는 쉽게 나의 불행을 자랑하곤 했다. 불행을 꺼내놓는 방식으로밖에 사랑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게다가 나는 나의 불행을 보듬어주던 사랑들을 쉽게 잊었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잊지 않고 돌멩이처럼 담담하게 나의 옆에 책의 형태로 놔주었다. 사랑을 자랑하고,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나는 가만히 가늠해 본다. 과거의 사랑이 현재를 지탱한다는 사실은 때로 너무 쉽게 잊힌다.

문득, 작년에 이 책을 추천한 친구가 누군지 떠올랐다. 그는 내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 책을 추천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좋았던 경험을 나누는 것도 사랑이다. 나는 그런 사랑을 아주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그 사랑들은 나를 더욱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하고, 또 지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만의 사랑의 재료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내가 받아온 모든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진 것은, 모두 시인 덕분이다. 나는 앞으로의 모든 여름마다 최지은 시인을 사랑할 것만 같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의 마음도 그녀 곁에 돌멩이처럼 살짝 두어 보고 싶다.

송지현 소설가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