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기억 속 공간이 사라져 버린다면 [.txt]

한겨레 2025. 8. 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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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가 평생 비행하는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는 것보다 더 길다.

그들은 태평양을 둘러싼 둥근 서클(Circle, 이 그림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모양으로 창공의 보이지 않는 고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 기억할 것은 우리 모두가 그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재료를 켜켜이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질감과 촉감을 창출하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는 작품의 대상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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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조은숙의 내일의 그림책</span>
위대한 여행l 제니 베이커 글·그림, 김목영 옮김, 토토북(2016)

도요새가 평생 비행하는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는 것보다 더 길다. 그들의 여행은 3∼4월 남반구에서 시작된다. 북쪽으로 날아가서 먹이를 먹는데, 그곳에는 한국의 갯벌도 포함된다. 다시 날아 알래스카에서 짝을 찾고 새끼를 낳기 위해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간다. 가족을 이룬 새들은 겨울을 피해 남반구로 다시 내려온다. 그들은 태평양을 둘러싼 둥근 서클(Circle, 이 그림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모양으로 창공의 보이지 않는 고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혹시 기억하고 있는 곳들이 인간의 개발과 도시화로 갑자기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무심코 어느 한쪽을 바꾸어 버리면 다른 한쪽은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작가 제니 베이커의 말처럼 ‘위대한 여행’은 새의 경이로운 비행과 생명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책들을 ‘생태 그림책’이라고 한다. 특히 호주의 생태 작가인 베이커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이래 줄곧 지구의 상호의존성을 말해왔다. ‘Where the Forest Meets the Sea(숲과 바다가 만나는 곳, 1987)’에서는 호주 원시림 지역인 데인트리 지역을 안내한다. “수백만년 전부터 이곳에 숲이 있었대요.”로 시작하여 나무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공룡들이 있고, 오래된 문명의 사람들과 조우한다. 하지만 개발의 현장 같은 미래의 모습이 숲 위에 한 겹 포개어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Window(창문을 열면·1991)’는 뒷마당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수풀로 무성한 땅 위에 ‘땅 팝니다’라는 팻말은, 작가의 경고처럼 매시간 멸종을 맞는 생명들의 예고편이다. 하나 기억할 것은 우리 모두가 그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작업 기법 또한 자연의 깊은 역사와 관계의 광범위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와 어우러진다. 재료를 켜켜이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질감과 촉감을 창출하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는 작품의 대상마다 다르다. 깃털과 머리카락, 모래 등 각종 천연재료와 천, 합성수지 등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가공하여 실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드러내려는 대상을 탐구하여 색이나 형태, 성질 등과 세심하게 관계 맺기를 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태 그림책들은 주로 생명의 아름다움이나 훼손된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다룬 것들이 주가 되어왔다. 이것은 현장에서 생태 교육이 자연보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베이커의 책은 자연을 보호하자는 구호를 넘어서 자연과 우리가 결국 하나라는 것, 인간은 여느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 다른 생명체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함을 드러낸다. 그래야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30~31일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아시아태평양컨퍼런스’에 제니 베이커가 온다. https://apconference2025.org/registration/)◀

조은숙 그림책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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