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복개천, 도시 홍수로 존재를 드러내다 [전국 인사이드]

이삼섭 2025. 8. 15. 08: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7월17일  광주 북구 중흥동 북구청 사거리에서 전남대 방향으로 향하는 일반도로에는 사람 종아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119 대원들이 차량 운전자를 구조하고 있다. ⓒ무등일보

광주에 물지옥이 펼쳐졌던 7월17일 광주 북구청에서 신안교로 이어지는 용봉로. 시민들은 낯선 물길을 목격했다. 아스팔트 도로 아래 꼭꼭 숨겨져 평소엔 알 수 없었던 물길이 콘크리트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자동차가 달리던 도로를 누르고 물길은 세차게 북구청에서 전남대 정문으로, 다시 신안교로 흘렀다. 이 거대한 물길은 차와 집을 집어삼켰다. 시민들은 떠내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이를 이겨낼 힘이 없던 한 노인은 결국 그대로 떠내려가 열흘 가까이 지나서야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인 하루 400㎜가 넘는 강우가 쏟아진 날, 광주시민들은 재앙이 된 ‘복개 하천들’을 마주했다. 도시화 과정에서 자동차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아스팔트를 덮은 일이 ‘도시 홍수’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7월17일부터 사흘간 광주에 내린 극한 호우 피해지 대부분이 복개 하천 인근이다.

용봉천과 서방천, 극락천···. 이름만 남은 물길들이다. 그러나 복개된 하천은 폭우가 오면 그 존재를 무섭게 드러낸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빼앗긴 물길은 사각형의 좁은 관로에서 막히며 도로 위로 튀어나와 본래의 길을 흐른다. 북구청에서 신안교까지 이어진 이번 침수 피해는 자연스러운 물길을 상자 안에 가둔 데 대한 경고인 셈이다.

광주 도심에는 이런 복개 하천이 15곳이나 있다. 하천 길이로만 보면 약 6만941m, 복개 구간 길이는 4만1816m에 이른다. 복개 하천은 대부분 구도심(원도심)에 집중돼 있다. 광주 구도심은 무등산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소하천이 즐비했다. 특히 광주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류 하천이 있었다. ‘물이 많은 들판’이라는 ‘물들’이 광주의 옛 지명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에서 광주천을 제외한 소하천은 전부에 가까울 정도로 복개했다. 하천뿐만 아니라 광주 도심 물그릇 역할을 하던 저수지도 매립됐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광주 최대 저수지이자 유원지였던 경양방죽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인 1960년대에 매립됐다. 그 위로 택지지구와 도로가 만들어졌다. 경양방죽을 매립해 만든 택지는 금남로 확장 공사 재원으로도 쓰였다. 사실상 광주 도시화의 역사는 광주천을 제외한 모든 물길과 물그릇을 덮고 또 매립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강우 쏟아진 날, 재앙이 된 ‘복개 하천들’

그러나 그 같은 결정의 대가는 기후 재난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우선 폭우 시 광주 도심에서 물을 가둘 곳이 없어졌다. 과거 광주 도심 빗물을 받아주던 경양방죽이 사라지면서다. 사실상 광주천 하나에 의존하는 셈인데 폭우 때 가장 먼저 수위가 차오르는 곳이 광주천으로 지류의 빗물이 빠져나가질 못한다. 서방천과 용봉천 물이 만나 광주천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신안교가 항상 침수되는 이유다.

또 광주 복개 하천 15개 중 14개가 박스형이다. 콘크리트 박스로 물이 흐르는 건데 물길이 좁기 때문에 병목현상이 심하다. 배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폭우에만 취약한 게 아니다. 폭염에도 못잖게 취약하다. 광주 구도심 내 저수지(경양방죽)와 하천이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폭염에 취약해졌다. 생태하천과 저수지(호수)는 도심 체온을 낮추는 자연 냉각기다. 이에 더해 시민들의 숨 쉴 수 있는 여가 공간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복개 하천을 다시 생태 하천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하천 복원은 단지 자연성을 회복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의 전략이자, 생존의 문제가 된 셈이다.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장은 “도시홍수가 발생하는 취약 지역은 모두 땅속(복개 아래)에 소하천이 흐르는 곳이고, 도시 하천은 주변 기온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1980년대 광주천 수질이 극도로 나쁠 때도 여름철 폭염 완화에 기여했다는 연구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삼섭 (<무등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