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강아지 공장’서도 사람만 기다리던 천상 반려견 구조 뒷이야기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리오, 안돼! 갖고 와.”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의 옥상 놀이터에서는 활동가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인 ‘리오’(6세 추정 ∙ 푸들)를 만나러 간 순간, 리오가 간식 봉투를 물고 저 멀리 달려간 겁니다.
보통 간식을 가져간다는 건, 먹기 위해서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리오는 달랐습니다. 간식 봉투를 물고 그저 돌아다닐 뿐, 그걸 먹기 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활동가들이 리오가 물고 있는 간식봉투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 때마다 고개를 돌려 회피하는 모습은, 마치 활동가들과 놀고 싶다는 표현처럼 보였습니다.

간신히 간식 한 조각으로 물고 있는 간식 봉투를 되찾아온 뒤부터, 리오와의 본격적인 ‘물고 당기기’가 시작됐습니다. 리오가 좋아하는 인형을 던져주자 한달음에 달려가 물고 달려왔습니다. 이민주 선임활동가는 곧바로 리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듯 인형을 잡아들고는 리오와 함께 줄다리기, ‘터그놀이’를 시작했습니다.
“힘이 정말 좋아요.” 이 활동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오가 터그놀이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인형을 물고 다시 달아나는 리오의 마음을 돌리려면, 결국 다른 장난감이 필요했습니다. ‘삑, 삑’ 소리가 나는 곳으로 리오의 고개가 돌아갔고, 그곳에서는 이 활동가가 럭비공 장난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럭비공 장난감이 ‘최애템’이었을까요? 리오는 좀처럼 이 럭비공을 물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활동가의 품에 안겨 있을 때도 리오는 럭비공을 꼭 물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반려견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함께 제대로 놀 줄도 아는 리오는 대체 어떤 사연으로 보호소 생활을 하게 된 걸까요?

야산에 숨은 무허가 번식장.. 그 속에서 울부짖던 개들
지난해 2월, 충남 보령시의 한 야산. 이 활동가를 비롯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깊은 산속에서 발견된 것은 비닐하우스 그 안에서 나는 개 짖는 소리만으로도 활동가들은 안의 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불법 번식장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은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든 불법 번식장이 그랬지만, 여기는 정말 바닥이 오물 더미 그 자체였거든요. 모든 케이지가 다 그랬어요. 개들의 대변이 정말 수북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개들이 방치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습니다. 이 불법 번식장이 최소한 5년 전부터 산속에 자리 잡고 있었었다는 것.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2019년, 이 번식장이 가축분뇨법에 따라 무허가 시설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번식장 주인은 이를 무시하고 버텨왔고, 정작 불법 번식장을 단속해야 할 동물 관련 부서는 동물자유연대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동물들은 개 121마리, 고양이 2마리였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동물들을 구조해야 하는 탓에 보호소 돌봄활동가들까지 그야말로 ‘총동원령’이 내려진 현장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철장에 갇힌 개들을 하나하나 이동장으로 옮겼습니다. 어떤 개들은 단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 뜬장에서 갑자기 낯선 이가 손을 집어넣자 두려운 마음에 몸을 더 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개들 사이에서도 리오는 유독 눈에 들어온 친구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다가올 때 구조를 알아차린 것인지 몸을 맡겼다는 게 이 활동가의 기억입니다.

어쩌면 가정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리오가 유독 사람을 잘 따르거든요. 오랫동안 번식장에서 지낸 만큼 피부도 좋지 못해서 매번 약욕을 해줘야 하는데 한 번도 그걸 피한 적이 없었어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그렇기에 활동가들에게는 의문부호가 남았습니다. ‘대체 리오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걸까?’ 그러나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번식장 주인은 수많은 개들을 언제, 어떤 과정으로 데려왔는지 제대로 답하지도 못했습니다. 기록도 없는 까닭에 그저 물음표에 추정으로만 답한 채, 활동가들은 리오와 122마리 멍냥이들을 데리고 온센터로 향했습니다.
“문 앞에 앉아 사람과 장난감 놀이를 항상 기다려요”

리오와 함께 촬영할 때마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많이 담겼습니다. 옥상에서 놀이를 즐기고, 산책을 나갈 때도 리오는 모든 활동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구김살 없이 다가가는 리오를 마다할 활동가들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산책까지 마치고, 리오의 보금자리에 방문하자, 조금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활동가들이 다른 강아지들을 돌보러 잠시 자리를 비우자, 리오가 카메라를 등지고 문 앞으로 가서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1분, 2분.. 리오는 아무리 불러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돌아온 이 활동가에게 이 모습을 설명하자 그는 “사람을 자꾸 기다린다”며 “다른 개들도 있어서 리오만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구김살 없는 리오에게도 딱 한 가지 걱정거리는 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이동장’. 얌전하게 사람을 기다릴 줄 아는 리오지만, 이동장에 들어가 기다리는 건 영 힘들어 보인다고 하네요.

사실 구조 때도 그랬어요. 좁은 켄넬에 갇혀 구해달라고 계속 짖고 있었죠. 확실하진 않은데, 리오가 성대 수술을 받았는지 목이 쉰 것 같은 소리를 내거든요.
막상 구조하고 보니 리오가 그렇게 잘 짖지도 않았어요. 안심하고 있었는데, 외부 동물병원에 데리고 나가려고 이동장에 들여보내니 갑자기 울부짖는 거예요. 아, 이게 리오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구나, 싶었죠.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돌봄활동가
대체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미래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강아지가 입양을 가지 못한다는 걸, 온센터 활동가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리오와 보령 번식장 친구들은 어두컴컴한 번식장에서 정말 열심히 짖었던 것만 생각이 나요. 특히 리오는 장난감도 좋아하고 사람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무도 그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잖아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무서웠을까 싶어요.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리오에게 좋아하는 장난감과 더 많은 시간 함께 놀아줄 가족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돌봄활동가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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