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지어진 국내 첫 지하보도 떠나지 않는 상인들… 구청과 7년 째 다툼 중
지하 상점, 처음엔 다과 팔며 성업… 지금은 노숙자 80여 명

서울 중구 숭례문(남대문) 인근에 있는 국내 최초의 지하보도 ‘남대문 지하보도’를 두고 중구청과 지하보도 내 상인이 7년째 대립하고 있다. 중구는 공간을 문화시설로 바꾸려 상점 철거를 추진했는데, 2개 점포 상인이 소송을 벌이면서 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이 지하보도는 일제강점기 말 유사시 방공호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현재는 노숙자 수십 명이 머물고 있어 인근 직장인과 상인들은 정비를 요청하는 민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15일 조선비즈가 취재했다.

◇일제 말 유사시 방공호 목적으로 건설… 6·25 때 북한군·중공군 이용
남대문 지하보도는 신한은행 본점과 남대문시장을 잇는 약 100m 길이의 보도다. 북창동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도 있다. 과거에는 숭례문 방향 출입구도 있었다. 이곳에 경성전차(광복 후 서울전차) 정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00년 펴낸 ‘서울교통사’에 따르면 남대문 지하보도는 1942년 2월 착공돼 1943년 3월 준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인구는 구한말 30만명 정도였지만 1942년에는 111만4000명으로 늘어 교통난이 심각해졌다.
숭례문 일대는 6개 방향 도로와 3개 방향 전차선이 교차해 교통이 혼잡했다. 남대문 지하보도는 지상으로 차량과 전차, 마차가 통행하고 사람은 지하로 다니도록 해 교통 혼잡을 줄이려 만들어졌다.

다른 용도도 있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40년 11월 5일 자 기사에서 “이 지하도로는 비상시에는 방공호(防空壕)로 사용하도록 내비식(內扉式, 문이 안쪽으로 열리는 형태) 문을 장치할 터인데, 이 속에는 피난민을 수용할 수 있게 하리라고 한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의 1953년 4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6·25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과 중공군은 유엔군이 폭격을 하면 이 지하보도를 방공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남대문 지하보도는 국가유산청이 소유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노숙자 많을 때는 80명 넘어… 서울시, 문화시설로 정비 추진
남대문 지하보도 내 상가는 1940년대 준공 당시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는 “중앙에 광장을 만들고 매점을 두어 통행인에게 서비스를 하게 하는 이상적 지하도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1953년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이 지하보도 내 상점에서 다과를 팔았다고 나온다.
그러나 80년 뒤 이 지하보도는 주로 노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북창동 방향 출입구에는 노숙자가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텐트가 한 동 있었다. 20년 넘게 이곳 노숙자들에게 봉사활동을 해 온 유은숙(84)씨는 “한때는 노숙자가 80명 넘었다. 최근 날이 더워져 20명 안팎으로 줄었다”며 “시원한 곳이나 식사를 주는 곳으로 일시적으로 간 것”이라고 했다.
남대문 지하보도에 노숙자들이 모여 민원이 발생하자 서울시는 2017년 이곳을 도시계획 문화시설로 지정했다. 2018년에는 지하보도를 관리하는 중구에 ‘상인들에게 도로점용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상당수 상인은 점포 문을 닫고 떠났다.

◇상인 “가게 뺏어가려고 도로점용료 부과” 중구 “꾸준히 점용료 내더니”
그런데 7년이 지나도록 이곳에 있던 10여 개 점포 중 2곳이 남아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남은 상인 두 명은 모녀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구는 이들이 영업을 계속하자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지하보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면서 변상금을 부과했다. 상인들은 변상금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021년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당했다. 그러나 그 뒤로 4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영업 중인 상인 측 변호인은 “정당하게 분양받은 점포인데, 중구가 뺏어가려고 이전에 받지 않았던 도로점용료와 변상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지하보도는 도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도로점용료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중구는 두 상인이 과거 도로점용료를 꾸준히 납부해 왔다고 반박했다. 중구 관계자는 “남대문 지하보도는 숭례문 광장의 비상 통로 역할을 한다”면서 “서울시 조례상 도로 부속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강제 철거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영국에서 온 한 관광객은 이 지하보도를 지난 뒤 “노인들이 누워 있고 상점들이 닫혀 있어 무섭다”고 했다. 인근 직장을 다니는 오모(37)씨는 “노숙자가 많을 때는 오가기 꺼려진다”며 “지하보도가 빨리 문화공간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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