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K애니 '케데헌' 흥행…"국내 창작자·저작권 보호해야"[광복 80년, K도약 리포트]

권경성 2025. 8. 1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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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싱턴한국문화원 K팝 아카데미 인기
"K팝의 다양성, 복합성, 창의성 뛰어나"
K팝, 한국 이미지 제고·K문화 확산 기여
'케데헌' 흥행, 전 세계 문화 지형도 바꿔
K열풍 국내 창작자 역할 크지만 홀대 여전
지난달 19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이미지네이션 스테이지 발표회 무대에서 ‘K팝 아카데미’의 초급반 수강생들이 공연하고 있다. 워싱턴한국문화원 제공

“소피아, 더 나와야 돼. 에브리싱스 오케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공연장인 이미지네이션 스테이지. 워싱턴한국문화원이 기획한 댄스 강습 프로그램 ‘K팝 아카데미’의 발표회 리허설 현장에서 K팝 안무 강사 제이 김(42)은 분주히 수강생들을 살폈다. 특히 18명으로 이뤄진 초급반 팀의 군무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그레이스, 센터예요. 세임 라인(같은 줄), 돈 포겟(잊지 마세요).”

이날 발표회에선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의 ‘날리(Gnarly)’의 안무를 선보인 중급반 6인조의 첫 공연에 이어 초급반 팀이 2개 조로 나눠 제로베이스원의 ‘블루’와 NCT 드림의 ‘비트박스’에 맞춰 춤을 췄다. 그룹 리더는 공연 직후 인터뷰에서 “K팝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마주해야 했다”며 “어색해 보이고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계속해 보자’는 제이 김의 격려에 따라 자신감을 가지려 했고 결국 해냈다”고 말했다.


"K팝의 차별화한 다양성에 매료"

지난달 19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이미지네이션 스테이지에서 발표회 시작 전 만난 ‘K팝 아카데미’ 수강생들. 왼쪽부터 에이미 모스, 엘라 은지에이-모코냐, 레이건 닉스. 베데스다=권경성 특파원

K팝 아카데미는 한국 대중음악 강사들을 재외 한국문화원에 파견, 현지 한류 팬들에게 춤과 노래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의 프로그램으로 2016년 시작됐다. 워싱턴문화원도 6년째 운영 중이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수강생은 K팝의 매력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메일링 류(30)는 “감성적인 발라드부터 에너지 넘치는 팝송까지 K팝의 차별화한 다양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호라이즌 미구엘(29)은 “춤부터 안무, 음악, 프로듀싱, 보컬, 패션, 개성까지 엄청나게 많은 요소가 공연에 녹아들어 있다”며 “정말 종합적인 예술”이라고 했다.

이런 복합성이 창의성으로 귀결된다는 평가도 나왔다. 엘라 은지에이-모코냐(17)는 “K팝의 콘셉트적인 측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콘셉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창의적인 시도가 가능하다는 게 K팝의 진정한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K컬처 열풍에서 K팝의 지분은 절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5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를 접한 외국인이 한국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이미지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K팝(17.8%)이었다. 스트레이키즈의 팬이라는 미국 아메리칸대 재학생 제네시스 마르티네즈(19)는 비영리단체와 함께 봉사하는 K팝 그룹 멤버를 본받아 자신도 남을 돕는 데 열정을 쏟는 사람이 됐다고 했다. 그는 “K팝은 단지 경제적으로만 세계에 영향을 준 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이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3일 열린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 여섯 멤버 중 한국 국적은 단 1명뿐이지만 K팝 기술력으로 기획된 'K팝 그룹'이다. 하이브 제공

K팝이 쏘아 올린 흥행 열풍은 K컬처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외에서의 한국의 위상도 달라졌다. K팝 아카데미의 여러 수강생이 밝힌 한국의 인상은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고 국민이 열심히 일하는 보수적이고 근면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이었다. 이를 해체하는 역할을 하는 게 K팝이다. 호라이즌은 “K팝과 한류가 한국의 보수적 이미지를 사그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K팝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브라질 출신인 에이미 모스(27)는 “K팝을 듣게 된 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졌고 음식, 태권도, 역사 등 한국의 모든 게 궁금해졌다. (미국 내) 한인 교회에서 한국계 친구들과 대화하며 한국의 깊은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레이건 닉스(18)는 “K팝에 빠지고 나서 한국의 역사, 문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려 애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미 합작 '케데헌' 열풍... 해외가 K콘텐츠 만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제공

지난 6월 공개돼 단숨에 세계를 휩쓴 K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현재 K팝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K팝 아이돌 그룹과 한국 문화를 앞세운 최초의 해외 제작 K애니메이션이다. 자본과 유통은 미국 기업이 맡았지만, 창작은 캐나다 교포 감독 매기 강이 주도했고 주요 스태프, 배우, 가수 등도 대부분 한국계다.

영화는 공개 직후부터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은 지난 1일 자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미국 빌보드 종합 싱글 차트 1위까지 석권했다. 자본과 매체의 탈국가현상과 맞물려 할리우드 시스템과 한국 문화가 결합한 문화 상품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 열풍은 국내 창작자와 기업이 만든 한국 문화로 해외를 찾는 방식에서 해외의 창작자와 기업이 한국 문화를 향유하는 시대로의 대전환점이다. 전 세계가 K팝과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던 시대를 넘어 K팝 중심의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주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애플TV플러스가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파친코’를 만들고 네슬레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식 매운 라면을 내놓는 시대다.


K팝, 균형 있는 성장 고민해야... 창작자 홀대 걸림돌

K컬처 글로벌 도약을 계기로 K컬처로드를 잇기 위한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K팝은 팬데믹 기간 정점을 찍은 뒤 주춤하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도 ‘기생충’ ‘오징어게임’ 이후 이렇다 할 만한 글로벌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종속되며 국내 영상 콘텐츠 산업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K팝 기획사들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창의성보다 자본에 휘둘리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기획사들이 단기간의 수익을 좇으며 안전한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사이 신인 그룹들은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뒤를 이을 만한 대형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이 체급을 키우는 과정에서 노동 환경이나 창작, 경영구조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놓치고 있다”면서 “급격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창작가들이 고유한 매력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균형 감각을 갖춘 성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 CJ ENM 제

한국 문화계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요소 중 하나는 창작자에 대한 홀대다. 상대적으로 정도가 덜한 가요계를 제외하면 자본이 창작자를 착취하는 구시대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분야가 적지 않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K문학의 세계적 성취에도 작가들이 마음껏 박수 치기 어려운 건 저작권자인 작가를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 출판계의 악습 때문이다.

영화계도 심각하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영화를 창작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저작권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작자에게 모든 권한을 귀속시킨 저작권법 탓이다. 창작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새로운 인재의 진입을 막고 이는 결국 산업의 붕괴로 이어진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K팝 작사·작곡가는 저작권을 인정받지만 영화를 창작한 주체는 저작권법 때문에 전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인재들이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데 K팝과 달리 영화계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어서 이런 인재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베데스다 =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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