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11)말기암 어머니와 스위스 존엄사 여행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남유하 작가 인터뷰
“수명이 늘어난 지금, 죽음에 대한 고민은 의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개인에 선택지 줘야”

“아니, 몸이 뜨거워.”
“어지러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2023년 8월3일, 스위스 현지 시각 오후 12시30분(한국 시각으로 오후 7시30분). 고(故) 조순복씨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스위스 조력 의료단체 ‘디그니타스’에서 남편과 딸인 남유하 작가의 배웅 속에 생의 여정을 마무리한 순간이었다. 고향에서 무려 8770㎞나 떨어진 낯선 땅. 그곳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씨도, 남 작가도. 조씨는 디그니타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여덟번째 한국인이었다.
2년이 지난 올해, 남 작가는 이 여정을 책으로 묶었다. 국회 보좌관직을 내려놓고 SF소설을 써오던 그가 어머니와 보낸 길고도 복잡했던 시간을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에 담았다. 그리고 묻는다. 존엄한 마무리란 무엇인가.

“엄마, 안녕.”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평온했다’고 기억한다. 조씨는 블루하우스에 도착 후 구토억제제를 복용하고, 의사결정 확인서를 작성했다. 30분 후 전문 약제를 스스로 먹었다.
“약을 드신 지 1분도 안 돼 잠드셨어요.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대답하지 못하실 정도였어요.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고 방안을 천천히 둘러봤어요. 고요했고 평화로웠어요.”
남 작가는 지금도 그날의 정적을 떠올린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우리 30분만 더 이야기하자’는 말을 왜 못했을까, 늘 마음에 남아요.”
“어머니 유골은 스위스에 모셨어요. 지난해에도, 올해도 그곳에 다녀왔고요. 아버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남 작가는 어느 날 어머니의 서랍에서 붕대 뭉치를 발견했다. 단순한 응급 도구가 아니라 절박한 심정의 징표였다. 그 무렵 어머니가 물었다. “엄마도 스위스 갈까?” 남 작가는 그 의미를 즉시 알아챘다. 함께 본 존엄한 마무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아한 죽음’ 속 주인공이 떠올랐다. 남 작가는 어머니를 말리는 대신 “응”이라고 답했다.
모녀가 처음 문의한 곳은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기관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은 신청받지 않았다.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반면 디그니타스는 외국인에게도 문을 열어두었고, 절차와 정보도 투명했다. 두 사람은 그곳을 선택했다.
“디그니타스와 주고받은 이메일만 66통이 넘었어요. 어느 순간엔 제가 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을 돕는 ‘죽음의 선봉장’이 된 것 같아 괴로웠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디그니타스에서 허락을 의미하는 ‘그린라이트’가 떨어진 뒤에도 조씨는 여러 번 일정을 앞당겼다.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 과정은 가족 모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었다. 스위스로 향하는 여정 역시 험난했다. 암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조씨는 휠체어에 의지해 장거리 비행에 올랐다.
존엄사가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시선에 대해 남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존엄한 이별이 허용된 국가에서도 이를 택하는 비율은 4~5%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한다. 남 작가의 아버지도 스위스 여정 중에는 “나도 저렇게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다”며 마음을 바꿨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자체라는 게 남 작가의 판단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효(孝)라는 개념을 이상화해요.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해요. 더 많은 분이 품위 있는 마무리를 이야기하죠.”
남 작가가 책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는 지금도 손톱 두 개를 검은색으로 칠한다. 어머니를 위한 조용한 애도의 표현이다.
“어머니는 삶을 포기하려던 게 아니에요. 삶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스스로 마무리할 권리를 선택하신 거예요.”
남 작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배어 있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나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주었으면 합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8770㎞ 떨어진 한국. 조씨의 선택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존엄한 마무리를 맞을 권리’와 ‘생명의 소중함’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찾아야 할까. 남 작가의 기록은 그 고민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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