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절정(絶頂), 이육사

정훈탁 2025. 8.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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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절정(絶頂)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육사는 39년을 사는 동안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만 17번을 갔다. 시인이고 우국지사이고 독립투사였다. 1927년 일제의 수탈 도구였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때 수인번호였던 264를 이후 필명으로 사용했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옥사했다.
화자는 매운 계절 채찍에 갈기는 폭압적 현실로 인해, '북방>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까지 밀려 왔다. 화자의 공간이 좁혀짐에 따라 극한 상황은 심화되고 있다. 화자가 있는 곳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곳, 서릿발 칼날진 곳,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곳이다. 이처럼 절망적인 극한 상황 속에서 화자가 최후의 행동으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생각. '겨울'은 차갑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일제강점기 폭압적인 현실을, '강철'은 두드릴수록 더 단단해지는 속성으로 강인한 극복의지와 저항의지를, '무지개'는 꿈과 희망과 밝음의 원형적 상징으로 조국광복을 의미한다. 은유(메타포)와 역설(패러독스)을 통해 현실은 겨울로 비극적이지만, 강철같은 무지개로 황홀한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비극적 황홀이라 한다. 육사의 '절정'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