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총독부를’…미·러, 점령지 ‘행정통치’ 논의
국경 변화 없기 때문에 우크라 헌법에도 위배 안 돼
젤렌스키·유럽 “러 소유권 인정 불가…안전보장 필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으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점령 모델을 적용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사정에 밝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 제안이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중동특사와 러시아 당국자 간 논의에서 제기됐다고 전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지난 6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을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논의했으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계획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경제·군사적 통제권을 모두 확보하고 자체 행정기구를 운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지배한 방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헌법상 ‘국민투표 없이 영토를 양도할 수 없다’는 조항을 우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서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도 국경을 변경하지 않은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국경도 명목상 그대로 유지된다는 구상이다.
소식통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는 것과 똑같을 것”이라며 “총독을 두고 경제 구조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로 편입되지만 우크라이나가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라고 말했다.
이 제안은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러나 미·러가 합의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알래스카 회담에서 배제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를 선물처럼 내주지 않겠다”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외교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이 “전쟁 중단에 동의하지 않으면 심각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은 젤렌스키 대통령 및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화상회의를 한 직후 나온 것이다. 유럽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의 후속 협상 참여’ ‘평화 협상은 휴전 성사 후 시작’ ‘영토 협상은 현재 전선에서 출발’ ‘러시아 점령지의 법적 소유권 인정 불가’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협상 결렬 시 강력한 대러 제재’ 등을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휴전이며 영토 문제는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자신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은 불가하지만 유럽이 공동으로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뜻을 밝혔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은 전했다.
외신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휴전이 합의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디애틀랜틱은 “협상을 성사시키려면 푸틴이 휴전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다는 허세라도 부려야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면서 미국에 러시아를 압박할 카드가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협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전에도 푸틴과 그런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계속해서 민간인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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