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백마 타고 온 초인을 떠올리며
중국 하얼빈에서 단신으로 적 수괴를 처단한 의사, 압도적 군사폭력에 맞서다 죽어간 광주의 소년, 계엄 내란 무장대를 막아낸 맨손의 시민들을 ‘초인’ 아니고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내란 주모자가 중과부적이라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대는 뜻밖에도 맨손의 연약한 시민들이었고, 연약함의 연대를 통해 만들어낸 막강한 힘, 그것이 백마 타고 온 초인의 현대적 모습이리라.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남은 50일 동안 그는 ‘안응칠역사’ ‘동양평화론’을 썼고, 많은 휘호를 남겼다. 휘호에서 그는 자신을 ‘대한국인 안중근’으로 썼다. 거기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낙관 대신 찍은 왼손바닥 장인(掌印)이다. 먹물 진한 손바닥 중에서 약지 끝 손마디가 비어있음을 보면 내 손마디에 찌르르 통증이 전달되어 온다. 절단한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로 쓴 글씨는 ‘대한독립’이었다.
왜 ‘대한국인’으로 썼을까. 안중근은 “조선”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신민”이 되었는데, 당시 대한제국은 사망선고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고단한 독립투쟁에 뛰어들면서 근대 문물을 접하고 동양평화론까지 나아간 그는 독립투쟁의 과정에서 허망한 제국의 그림자를 지워냈다. 제국의 신민을 넘어서 “대한국인”으로까지 진전시켜 냈다.
독립투쟁은 일제를 물리치려는 일념에 충실했지만, 생전에 독립과 해방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싸웠다. 왜놈의 종으로 굴종할 수 없기에 싸웠다. 자신의 불사름이 또 다른 희망의 불사조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싸웠다. 생명을 걸고 인간 존엄성을 드높였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웠다. 패배했지만 패배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 숭고한 삶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인간 존엄성과 민족 자존심을 위해서이다.
그런 숭고한 애국심을 멸시하고 삭제하고자 하는 못된 무리들도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세워진 것은 2018년에 이르러서이다. 항일독립전쟁의 표상을 통해 위국헌신의 자세를 배우자는 뜻과 함께, 국군의 정신적 뿌리에서 친일의 오점을 정화하려는 뜻도 담겼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흉상을 제거하려 했고, 이간질 책동까지 했다. 그들의 음험한 기획은 끝내 저지되었다.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 반면교사로 깨닫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1919년 3·1혁명운동이 일어났다. 신분, 지위, 남녀, 노소, 지역, 내외를 막론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대중의 핏방울 속에서 새 나라가 탄생했으니,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외세를 물리치고 ‘대한’을 회복하고, 황제의 나라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된 ‘민국’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대한국인’을 넘어서, ‘대한민국인’으로 확실한 주권자 지위를 쟁취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다. 그 제1조는 100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헌법 제1조로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윤석열 정권은 독립운동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폄하하고 제거하는 일에는 무척 열심이었다. 그들이 숭배한 이승만조차도 ‘대한민국 30년’의 연호를 썼고, 1948년 정부 수립이 신생 국가의 건설이 아니라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을 역설하며 헌법 전문에 수록하도록 했는데도 말이다.
1945년 8·15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 날’이었다. 심훈은 노래했다.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었다. 그 날은 빛의 회복, 광복이라고 부른다. 광복의 빛은 주어진 빛이 아니었다.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박두진) 솟아나는 고운 해였다. 산을 넘고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나오는 해였다. 그 햇살은 주권 독립과 민주공화의 햇살이고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려’ 두루 온기를 비추어줄 햇살이었다.
역사의 전개가 평탄할 리 없건만, 어두운 터널을 거쳐 가면서도 대한이 민주공화, 국민주권의 기본선 이하로 후퇴될 수는 없었다. 도전과 위기는 대통령직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어떤 무리를 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자, 대통령직을 연장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란적 쿠데타를 획책했고,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4·19혁명으로 심판했고, 부마민주항쟁으로 맞섰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처절하게 싸웠다. 단기간엔 패배한 듯 보인 경우에도, 그 패배 속에서 승리의 씨앗을 심고 키웠다. 특히 광주시민들을 유혈 진압한 헌정 파괴 집단들은 무력 진압의 극심한 후유증으로 인해, 더 이상 군대를 동원할 수 없었다. 수십년간의 문민화 과정에서 국민 역량은 보이지 않게 쑥쑥 자랐다. 쿠데타 집권자들을 내란범으로 단죄한 성과는 소중한 민주 유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의 계엄선포는 시대착오적 책동이었다. 그동안의 민주화 진전을 한번의 비상계엄으로 역진시킬 수 있다는 망동이었다. 무시무시한 계엄을 국민들은 미친 짓, 우스운 짓으로 치부해버렸다. 비상수단을 통해 제왕의 날개를 달고자 한 자에게 맞서, 국민들은 헌법기관들을 활용하여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 형사소추의 정상적 수단으로 응징하는 중이다. 국민이 권력자를 무서워하지 않으니, 왕년의 권력자는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중이다. 우리 국민은 ‘입틀막’과 처단 대상으로 간주되기를 거부하고, 국정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권자로서 우뚝 섰다.
어느덧 국민과 공직자의 관계도 바뀌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관민’이란 용어가 관용화되었다. “군관민이 일치하여 이재민을 도웁시다”는 식이었다. 민 앞에 관이, 관 앞에 군이 서열화되었다. 지금은 그런 용어 자체도 없다. 국민은 주권자이고, 문·무 공직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다. 모든 공직자의 직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2·3 내란에서 국무위원들은 민주의식은 없고, 다만 보신적이었고, 발뺌에는 능숙했다. 군 수뇌부의 내란적 명령에 대하여 현장 파견 군인들은 소극적 처신을 했고, 국회 침탈을 적극 거부하기도 했다. 내란세력을 제압한 것은 시종 민주시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시민들은 제왕적 통치행위를 제압하고, 내란 사범에게서 공직을 회수하고, 다양한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냈다. 이러한 집단 경험은 앞으로 헌정 수호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해방 직전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죽어간 이육사 시인이 남긴 ‘광야’의 마지막 구절을 불러온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여기서 초인은 과연 누굴까. 억압의 현실을 단숨에 타파해낼 초월적 구원자는 현실로 존재할까. 그런 건 없다. 매운 계절의 채찍을 맞아가면서, 겨울공화국을 깨쳐나간 주인공은 각계각층의 국민들이었다. 그 국민은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만세운동으로, 반독재투쟁으로, 촛불과 응원봉의 주인공으로 표현을 달리하면서 나타났다. 중국 하얼빈에서 단신으로 적 수괴를 처단한 의사, 압도적 군사폭력에 맞서다 죽어간 광주의 소년, 계엄 내란 무장대를 막아낸 맨손의 시민들을 ‘초인’ 아니고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내란 주모자가 중과부적이라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대는 뜻밖에도 맨손의 연약한 시민들이었고, 연약함의 연대를 통해 만들어낸 막강한 힘, 그것이 백마 타고 온 초인의 현대적 모습이리라.
그 초인이 할 일은?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는 일이다. 골방이 아니라 탁 트인 광야에서, 숨죽여서가 아니라 목놓아 부를 일이다. 즐겁게만 부를 일이 아니고, 눈물과 함께 부를 일이다. 누구를 부를까.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인물들을 찾아내고 확인하면서 호명하는 것이다. 한분 한분의 행적을 정확히 알고, 제대로 기념하고, 각종 폄훼로부터 지켜줄 일이다. 이름을 남길 생각도 않고 헌신한 이들, 자신의 공적을 남에게 돌린 이들의 헌신에 감사와 다짐을 표할 일이다. 아울러 질곡을 헤쳐가면서 박해받고 상처 입은 이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위로하고 격려할 일이다. 비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바른 역사와 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울 일이다.
이렇듯 8·15는 광복이면서 해방이고, 감사와 공감과 다짐의 순간이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광복의 발광체가 되고, 백마 타고 온 초인의 소임을 감당하고자 하는 주권자 ‘우리 대한국민’들이 마땅히 새기고 행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한인섭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법학). ‘100년의 헌법’, ‘계엄과 내란을 넘어’, ‘가인 김병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을 썼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에 대한 심층 대담집으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인권변론 한 시대’ 등이 있다. 시민이 주권자로 만들어 가는 헌법과 나라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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