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본은 망할 것" 안중근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 고국에 귀환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
수결란, 다른 유묵과 달라 '동양지사' 적혀
소유자도 "일본 먼저 교수형 처한다는 뜻"
일반 공개 시기 미정, 경기 시설서 먼저 공개

한국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이 광복 80주년인 올해 귀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도쿄에서 발견된 지 25년, 안 의사 순국(1910년 3월 26일) 1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유묵이란 죽기 전 남긴 글씨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안 의사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쓴 서예 작품을 가리킨다.
사단법인 윤봉길의사기념센터의 김광만 센터장은 도쿄에 거주하는 안 의사의 유묵 소유자 스즈키(가명)와 합의해 지난 5월 18일 장탄일성 선조일본을 영구 귀환했다고 14일 밝혔다. 경기도, 광복회 경기지부가 국내 귀환 작업을 함께 했다.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긴 탄식으로 (멸망한) 일본을 먼저 조문한다'는 뜻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엄하게 꾸짖으며,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만큼 향후 전쟁에서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다. 안 의사가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묵 왼쪽 맨 아래에는 안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폭 41.5㎝, 길이 135.5㎝ 크기의 명주천에 쓴 작품으로, 왼쪽 아래 수결란(서명하는 곳)에 '일천구백십년 삼월 동양지사(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대한국인 안중근 여순옥중서'라고 쓰여 있다. 연기를 '1910년'이라는 서기 연호로 적었고, '동양지사'라는 글자를 남긴 것이 그동안 확인된 안 의사의 유묵과는 다른 점이다. 김 센터장은 "지난 5월 귀환 이후 감정한 결과 진본으로 확인했다"며 "서기 연호와 동양지사를 휘호한 건 앞으로 연구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원 소유자는 안중근 재판받은 관동도독부 고위직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김 센터장이 안 의사 유해 매장지를 추적 중이던 2000년 4월 도쿄 도내 소재 한 자택에서 처음 확인했다. 이 자택은 유묵의 원 소유자인 옛 대만총독부 고관(스즈키 조부)의 집이었다. 학계와 언론을 통해 장탄일성 선조일본이 대중에 소개된 건 석 달 뒤인 그해 7월이다. 당시 사진과 영상 촬영만 허용됐고, 이후 유묵 실물이 공개되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한 적은 없다.
국내 귀환까지 25년이나 걸린 건 일본 우익 세력의 공격을 우려해 소유자가 협상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망한다'는 내용의 유묵을 일본인이 오랜 기간 보관하고 있었고, 한국으로 반출하는 점에서 거센 비난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원 소유자와 현 소유자에 대한 신상을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서약하고 나서야 올해 김 센터장과 스즈키 간 접촉이 성사됐다. 스즈키는 김 센터장에게 유묵 소유권을 양도하며 "2000년 만났을 때 '일본인에게 불편한 글귀를 소중히 간직해 줘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뒤 언젠가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 소유자인 스즈키의 조부는 옛 대만총독부 고위 관리와 안 의사가 재판받은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의 옛 일본관동도독부 고위직을 지냈다. 관동도독부 고위직 은퇴 후 교토 저택에서 사망했고, 장탄일성 선조일본 외에도 안 의사의 유묵과 유물들을 소장했다. 스즈키는 일본 정부 고위직을 지낸 아버지가 1968, 1969년쯤 당시 중학생이었던 자신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아느냐"고 말하며 처음으로 장탄일성 선조일본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 유묵을 증여받은 뒤 55년간 보관해 왔다. 스즈키는 장탄일성 선조일본의 뜻에 대해 "안 의사 본인이 교수형을 당하기 며칠 전 먼저 일본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선언인 셈"이라고 말했다.
소유자, 우익 공격 우려하면서도 "돌려주려 했다"

김 센터장은 장탄일성 선조일본 진본 공개 시기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그는 "유묵 귀환에 협조해 준 경기도 소재 박물관에 먼저 전시할 계획"이라며 "경기도가 설립 예정인 안중근평화센터에 영구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뤼순감옥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일본인들의 부탁으로 한 달가량 약 200편의 유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안 의사의 유묵은 약 90편이며, 이 중 국내에 귀환한 건 40여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센터장은 "안 의사의 유묵과 유물을 간직해 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일본인들이 이를 계기로 돌려주면 한일관계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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