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임진왜란 前 한때 조선의 부속섬이었다[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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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발표된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다.
조선 시대에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무역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당시 대마도주가 조선 조정에 보낸 사신의 봉서에는 "우리 섬을 주군(州郡)의 예에 따라 명칭을 새로 정해 주시고, 관인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켜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적혀 있다.
대마도 문제는 1950년 일본 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기 전까지는 소유권이 불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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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일본 땅, 독도는 우리 땅∼”
1983년 발표된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다. 과연 대마도는 애초부터 일본 땅이었을까?
대마도(對馬島·쓰시마섬)는 한국 남단과 일본 규슈 사이 대한해협에 위치한 섬. 거리상으로는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가깝다. 대마도에서 부산까지는 약 50㎞, 후쿠오카까지는 약 140㎞다.
조선 시대에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무역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당시 대마도는 일본 막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적의 소굴이었다. 대마도의 왜구들은 틈만 나면 우리의 해안을 침범해 약탈을 일삼았다.
고려 말 박위 장군은 대마도를 공격해 적선 300여 척을 불태우며 정벌에 성공했다. 1396년(태조 5년)에는 김사형이 두 번째로 정벌을 단행했고, 이종무 장군은 1420년(세종 2년) 대마도를 완전히 정벌해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대마도는 경상도 동래부 소속 도서로 편입돼 조선 정부의 통치를 받았다. 당시 대마도주가 조선 조정에 보낸 사신의 봉서에는 “우리 섬을 주군(州郡)의 예에 따라 명칭을 새로 정해 주시고, 관인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켜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적혀 있다.
조선은 대마도를 남쪽 국경의 울타리로 여겼고, 조공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관계는 임진왜란 전까지 이어졌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만든 ‘팔도총도(八道總圖)’에도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돼 있다.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인 1871년부터다. 대마도 문제는 1950년 일본 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기 전까지는 소유권이 불분명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주도권 확보를 위해 일본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일단락됐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오늘날 대마도에는 여전히 우리의 민족적 정서가 깊이 스며 있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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