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재일학도병의 눈물…“행방불명 83명 전우들, 내손으로 수습했으면”
부모님께 안 알린채
6∙25 자진해서 참전
전사자 한 명이라도 더
가족 품 돌려 보내고파
국가가 꼭 신경 써달라
![박운욱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3256xzdf.jpg)
군복을 입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미군 수송선에 올랐다. 군복에는 ‘S.V.(student volunteer·학생 자원자) FROM JAPAN’이라고 적힌 마크가 선명했다.
조국은 일제 통치 35년 끝에 해방됐지만 불과 5년 만에 전쟁통이 됐다. 재일동포 청년들은 학업과 생업을 내던지고 조국으로 달려갔다. 군번도 계급도 없었던 참전용사, 재일학도의용군이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던 642명의 청춘 가운데 이제 단 한 사람만 세상에 남아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치바현 본부에서의 재일학도의용군 출정식 기념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박운욱 회장.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4595itwc.jpg)
박운욱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98)은 지난달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6·25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전투였던 장진호 전투 때 목격한 참상을 증언했다. 박 회장은 전쟁 때 연신 귓가를 때렸던 포탄 소리 때문에 청력이 좋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목소리를 높여 질문 내용을 되풀이하거나 글씨를 써서 소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한국군과 미군 전우들의 이름과 계급, 날짜나 지명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공병대대 작전과 전우들과 함께 있는 재일학도의용군 최성규 씨(앞줄 왼쪽 첫째).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5868iopp.jpg)
박 회장은 “세상에 너무 참혹해서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 지옥이 있다면 그런 모습 아니었을까”라며 몸서리를 쳤다. 그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가 시신조차 찾지 못해 ‘행방불명’ 처리된 재일학도의용군 전우 83명의 유해를 살아 생전에 수습해 유족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운욱 회장의 일본 유학시절 사진.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7162dlox.jpg)
그는 “당시 메이지대 3학년생 선배들이 앞장섰고 재일동포 청년 모두 조국을 지키러 가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뭉쳤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재일동포 청년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죽어도 괜찮다’ ‘가서 한번 싸워보자’는 열기가 끓어올랐다.
![6·25전쟁 참전 당시 재일학도의용군들이 미군 측에서 받은 견장.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8491mjrt.jpg)
그는 “수송선이 어느 전쟁터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배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수송선이 닿은 곳은 인천 앞바다의 월미도. 6·25전쟁 초기 열세를 뒤집는 계기가 됐던 인천상륙작전 현장이었다.
![도쿄 스루가다이호텔 앞에서 거행된 재일학도의용군 1진 출정식 당시 모습.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09744niom.jpg)
살아서 돌아간 고향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박 회장은 “부모님께서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네가 왜 전쟁터로 다니다가 이렇게 나타났냐’면서 눈물 바람이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미군에 다시 합류해 경주, 안동, 충주, 원주를 거쳐 횡성에서 폐렴을 얻었고, 제대 명령을 받아 일본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쳤다.
![재일학도의용군 장병들이 미군과 함께 훈련을 받는 모습. [사진 출처 =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홈페이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11040djmy.jpg)
그는 대학 졸업 후 일본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귀국해 한양대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 회장은 “이 시기에 매주 며칠씩 서울과 포항을 오가면서 포항제철(POSCO의 전신) 압연공장 등 산업단지 건설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옛 서울시청 별관 리모델링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이후 그는 독일로 발을 넓혀 설계·감리 업무를 하면서 한진그룹 등 한국 기업이 독일 기업과 연계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사업을 수주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박 회장은 “독일 회사들은 건설 관련 용어나 품목 코드 같은 게 일본과 똑같아서 (수주에) 도움이 많이 됐다”며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외화(사업 수주액)도 50억달러 정도 벌어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박운욱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 [김호영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4/mk/20250814063012323acxy.jpg)
그는 거동이 편하지 않은 지금도 매년 정월 초하루와 현충일, 6·25전쟁 발발일과 광복절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재일학도의용군 묘역을 찾아 전장에서 숨져갔던 전우들을 만난다. 이곳에는 재일학도의용군 전사자 52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그러나 장진호 전투에서 숨져 시신을 거두지 못한 83명 전우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거동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다만 몇 사람이라도 유전자(DNA) 검사로 가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가도 국민도 꼭 신경을 써달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 83명 명단을 꺼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읽어 내려가던 박 회장의 눈가가 흐려지며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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