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선 찾은 日 선교사의 헌신, 한일 서로 더 아는 계기 되길”
일본 만행 속죄한 노리마쓰 선교사
조선 독립 운동 기여한 오다 선교사
‘일본인’ 이유로 잘 몰랐던 인물 조명

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한국명 전영복·1908∼1980)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노리마쓰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쓰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쓰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쓰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며 “그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목걸이 받고 총리실 자리 뚝딱…실체 드러난 ‘영부인 비즈니스’
- [사설]김건희 구속… 후진적 이권 거래에 망국적 매관매직까지
- [사설]국정과제 1호 개헌… 정권 초에 속도 내야 현실화될 것
- [사설]“대표는 당원만 봐선 안 돼”… 與 원로들의 쓴소리
- “차문 안열린다” 물 잠긴채 신고…80대 운전자 끝내 숨져
- 김문수, 당사서 무기한 농성 돌입 “무도한 특검 압수수색 저지”
- 계엄때 장갑차 막아선 부부, 李대통령 ‘국민 임명장’ 수여자로
- 교육부 ‘전교조 출신’ 최교진, 여가부 ‘민변 출신’ 원민경 지명
- ‘죽고 싶다’ 인식한 AI, 경찰 불러 70대 노인 구했다
- 싸이, 탁현민 전화에 “형이 부탁하면 안 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