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빌리고, 잡초 뽑겠다”지만… 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만 210조

김태준 기자 2025. 8. 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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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확대]
李대통령 ‘재정 확대’ 시사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국가 살림을 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어 고민”이라며 “비효율적 혜택을 받는 잡초를 뽑아내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했다. “씨앗을 옆집에서 빌려오는 것”(국채 발행) 말고도 정부 지출을 조정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총 27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88골프장(국가보훈부 소유)을 굳이 왜 갖고 있냐”며 정부 재산 매각을 지시했다.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축소하는 방안과 친일파 재산 환수 등도 언급했다.

그러나 매 정부마다 이전 정부의 사업을 정리하며 지출 규모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국가 채무만 늘었다. 정부 지출 중 의무 지출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손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각 정부가 자신들의 핵심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지출을 더 늘렸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지급되고 있는 소비 쿠폰만 12조원 규모로 정부는 내년에도 소비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국유재산 매각도 수요처를 찾기 어려워 처치 곤란인 경우가 많다. 결국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대통령실에서 열린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에게 내년 예산안과 관련해 “총액으로는 역대 최고인 27조원 정도를 절감했다”고 보고했다. “재량 지출 25조원, 의무 지출 2조원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교육세 배분 구조를 개편해 교육 교부금을 축소하고, 구직 급여는 좀 더 깐깐하게 지급하는 내용 등이다. 이 대통령은 세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과 관련해 “비효율적 혜택을 받는 잡초를 뽑아내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실제로 27조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나왔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27조원을 절감한다는 건 듣기 좋은 얘기지만 믿기 어려운 숫자”라며 “없어져야 하는 사업을 27조원에 포함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제3자 시각으로 냉정하게 보고 분석해야 한다”며 “정부 돈을 들여 민간단체에 용역을 주거나 상시 점검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든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 역시 기재부의 보고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김민석 국무총리 등 참석자들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간담회에선 대통령이 “정부가 왜 갖고 있냐”고 한 용인 88골프장이 10년째 매각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토론이 오갔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보훈부가 10년째 매각을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지금 1조원 넘을 거라 추정하는데 빨리 매각해서 보훈 예산으로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5000억원짜린데 1조원 내라 하면 절대 안 팔린다”고 했다. 조속히 매각하라는 취지다.

환수되지 않은 친일파 재산 1500억원을 환수해 보훈 예산으로 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를 듣고 “별도로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또 SOC 예산과 관련해서는 “SOC 예산은 정치적 요소가 꽤 있다. 휘둘리지 않도록 나를 믿고 버텨 달라”고 주문했다. “공공기관 통폐합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다”고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역대 모든 정부가 들어서면 ‘지출 재구조화’ 또는 ‘지출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이전 정부의 예산을 칼질했지만, 실제로 줄이기는 어렵고 새 정부가 핵심 예산을 새로 추가하면서 오히려 예산 규모는 계속 늘어왔다”고 했다. 국유재산 매각도 ‘헐값 매각’ 논란이 나올 수 있어 추진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씨앗을 옆집에서 빌려온다”며 국채 발행을 염두에 둔 발언은 이러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날 향후 5년간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해 총 21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210조원 가운데 약 178조원이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사업 등에 쓰는 ‘재정 지출’이다. 분야별로 나눠보면, 인공지능(AI)에 대한 국가 투자 확대 등 ‘혁신 경제’ 부문에 54조원을 쓴다.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과 서민 금융 지원 강화 등 ‘균형 성장’에 60조원, 출산·육아 지원 확대 등 ‘튼튼한 사회’ 항목에 58조원이 소요된다. 군 장병 복무 여건 개선을 비롯한 외교·안보 등 항목엔 6조5000억원이 쓰인다.

그래픽=정인성

정부는 세제 개편을 통해 이에 필요한 세수 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주식 양도세 증세 문제를 두고도 당정이 마찰을 빚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인세율 인상도 추진하나 업황이 좋지 않아 오히려 내년 세수는 감소할 수 있다.

국채 발행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올해 두 차례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으로 국가 채무는 올해 말 13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9.1%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재명 정부와 마찬가지로 확장 재정 기조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1948년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17년까지 누적 국가 채무가 660조원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1076조원으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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