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도체도 하청 신세 될 수 있다 [아침을 열며]
경쟁에서 밀리는 주력 산업들
D램 반도체도 쇠락 징조 감지
고객중심 전환 전략 준비해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미-중 패권 경쟁,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진입, 산업의 전환, 보호무역 기조의 대두 등 다중으로 중첩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던지고 있다. 냉철하게 평가하자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생존게임 상황에 처해 있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10년 전만 해도 잘 나가던 LCD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과의 게임에서 밀려났고, 20년 전만 해도 글로벌 수위를 다투던 석유화학과 한 세대 전 한국의 철강 생산량을 '글로벌 톱3'로 만들었던 제철 산업도 쇠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제 쇠퇴의 기색이 D램 같은 메모리반도체에도 도래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노하우가 있고, 축적된 기술 자산과 핵심 인력이 있으므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대두되는 다중 불확실성, 특히 AI 시대로의 급전환에 대한 맞춤형 대응 전략이 없다면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산업도 결국 해외 글로벌 대기업의 소재-부품 하청 파트너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
메모리 메이커들 입장에서 먼저 시도해야 할 솔루션은 메모리 소자의 성능 극대화다. 향후 AI 반도체 향으로 초저전력 구동 가능한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PC램(상변화메모리), Re램(저항메모리), M램(자성메모리), 그리고 memristor(신경망메모리) 같은 솔루션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 D램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AI 반도체의 핵심 기술 병목으로 작동하고 있는 메모리장벽(memory wall)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메모리 소자들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그 대안 중 하나가 하이브리드 메모리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전략은 PIM(process-in-memory)에 있다. 비유하자면 어차피 식사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빨래 건조에 1시간이 걸린다면, 그 시간 동안 끼니를 해결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개념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이미 수 년 전부터 PIM 개념을 양산 수준으로 테스트 중이다. 한국의 메모리 메이커들은 D램 셀, TSV, 패키징 공정 등의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PIM용 경량 연산 유닛(ALU, 벡터 엔진)을 메모리에 내장하는 방식의 하이브리드화를 구현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메모리는 큰 행렬 반복 연산에도 유리하므로 인공지능 모델의 기초를 구성하는 인공신경망 학습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엔비디아가 메모리를 GPU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온-칩 최적화를 하는 전략과는 달리, 메모리 내에서의 데이터를 미리 처리하는 방식으로 한국 업체들은 기술적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메모리 메이커들이 시도할 수 있는 두번째 솔루션은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전략 전환이다. 기존의 D램 메모리 반도체는 이른바 범용 반도체로서 고객보다는 시장 자체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AI 반도체 주도 시장에서는 맞춤형 반도체 최적화가 더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한국 메모리반도체 메이커들은 파운드리 회사처럼 고객과 적극 소통하는 맞춤형 메모리-연산 기술 공급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맞춤형 하이브리드 메모리를 위해서는 다목적 AI 엔진 통합 메모리 설계가 필요하다. AI 반도체마다 연산 강도는 제각각이므로 메모리 블록을 모듈 형태로 만들어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그러한 설계의 한 예다. 또한 하이브리드 메모리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로 만들어 고객사에 공급해야 한다. 고객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은 머신러닝 특화 하이브리드 메모리를 '스케일 업'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상황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메이커들은 서비스형 메모리 (Memory-as-a-service·MaaS) 같은 새로운 클라우드 비즈니스 모델도 고려할 수 있다. 아직 시장 규모가 작으나, 2026년에 30억 달러 규모, 2035년 3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MaaS를 SaaS처럼 이용하려는 고객을 타깃으로, 연산 IP와 최적화 알고리즘을 일괄 제공하여 최적화까지 해주는 모델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메모리반도체, 메모리 파운드리, PIM 같은 하이브리드 메모리, MaaS 모델 같은 고객 중심의 맞춤형 메모리 전환 전략은 한국의 메모리메이커들에게 옵션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결국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는 지금의 일본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 같은 중간 포지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성균관대 공과대학 부학장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반클리프 모조품 누가 마련했나' '바쉐론 시계 실물 어디 있나' | 한국일보
- 구치소 독방서 아침 맞은 김건희, 첫 끼니는 '1733원' 식빵·딸기잼 | 한국일보
- "강선우 보좌진, 일 못해서 잘린 것" 발언에… 유시민 고발됐다 | 한국일보
- '조국 사면'에 '정청래 당선'까지... '오직 친명' 민주당이 달라졌다? | 한국일보
- 尹 부부 동시 수감에… 윤상현 "비극 못 막아 사죄드린다" | 한국일보
- 조국 부부 광복절 특사에… 딸 조민 "비 와도 마음은 맑음" | 한국일보
- '계엄 당일 尹 통화' 나경원, 특검 맹비난… "내란몰이 창조 수사" | 한국일보
- '원폭 상흔' 히로시마 옆마을에선... 욱일기 꽂힌 카레를 판다 | 한국일보
- 김건희, '남편 없는' 서울남부구치소 2평 독방 수감 | 한국일보
- 무장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터...언제까지 옥수수밭으로 방치?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