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전통의 사물화 혹은 키치화
전통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주술적인 도상들이고 신화나 종교, 지배계급의 이념이라는 특정 텍스트에 기생하는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미지는 특정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그 이야기를 구전하고 기록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일구었고 삶을 지탱했다. 한국의 근대 이전 그림, 다시 말해 조선시대까지의 그림이란 특정 시대의 세계관, 신화와 종교, 정치적 이념들이 겹을 이루며 포개진 것의 표상화인데 무속화·불화·산수화·사군자·민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전통사회가 붕괴하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이전의 서사와 도상들은 소멸해갔다. 근대 이후 미술은 미술 내적인 담론을 거론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텍스트에 기반하면서 공통된 서사로부터 이탈했다. 근대에 들어와 특정 텍스트에서 해방된 이미지는 이제 순수한 감상을 위한 시각적 이미지가 됐다. 순수미술, 현대미술은 공동체가 아니라 철저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로 인해 실용적 도구이자 수공예로부터 예술의 구분이 이루어졌고,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새삼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 박물관에 소장된 모든 유물은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순수 전시 가치로 변질된 것들이다. 특정 장소에서 모종의 이야기를 구현하던 이미지들이 탈장소화, 탈맥락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시장으로 이동하고 해당 텍스트는 망실됐다. 그러니 그 문맥을 모르면 온전한 작품의 이해는 요원하다.
최근 우리 민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고 이를 모방하는 미술인의 숫자가 팽창하고 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에 힘입어 까치와 호랑이 배지와 같은 굿즈를 수집하기 위한 관람객이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그 작호도(鵲虎圖·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민화)란 과연 무엇인지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문맥에 대한 이해 없이 이미지만 소비되는 현상은 아닐까? 전통이 박제화, 사물화, 키치화의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닐까? 민화에 대한 관심은 소중하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의 원형을 이루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면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조상들, 즉 동이족에게 새는 조상신·수호신이자 지상계와 천상계를 연결하는 영매였다. 새를 토템으로 한 동이족은 삶의 곳곳에 새 이미지를 안겼다. 새는 하늘의 소식도 안긴다. 까치는 하늘의 기쁜 소식을 알리고 호랑이는 삿된 기운을 몰아내주기에 한 쌍으로 작호도가 그려진다. 까치는 민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서낭신의 심부름꾼으로도 알려져 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나쁜 귀신을 씹어 먹는다고 전해온다. 귀신을 막아주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는 영물로 인식됐다. 양(陽)의 동물인 호랑이는 음(陰)의 존재인 귀신과 도깨비를 능히 잡아 후려치고 부러뜨리며 깨물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그림을 앞에 두고 소원성취를 간절히 희구하면서 사악하고 못된 귀신들과 싸우며 착하게 살아온 것이 우리 조상들이란 얘기다.
한국 문화의 원형이 민화 안에 고스란히 잠복해 있으니 조선의 민화란 결국 한국인의 심성, 신화와 종교, 가장 인간적인 소망과 기복 신앙적인 성격이 오롯이 담긴 소중한 텍스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러한 문맥의 이해가 동반되는 동시에 민화의 뛰어난 회화적 특성에 대한 인식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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