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폭염에 프랑스 ‘에어컨 논쟁’… “냉방설비 확대” “온난화 해결을”
대규모 휴교사태 등 공공 서비스 파행
극우정당 “집권 땐 냉방설비 보급” 공약에
진보진영 “당면 문제만 해결 땐 환경 악화”
유럽 조밀한 건축구조에 설치 어려워
도심 녹화·에너지 효율성 개선 급선무
에어컨이 프랑스 정치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달 7월 유럽 전역에 역대급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냉방 장비 보급률이 낮은 프랑스에서 에어컨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급부상한 것이다. 극우 정당이 ‘에어컨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우자 진보 진영이 ‘기후위기 대응’이 우선이라며 맞불을 놓아 이념 대결의 양상까지 띠고 있다.

국민연합은 지난 6월부터 폭염이 강타해 대규모 휴교 사태까지 발생하자 에어컨 부족으로 학교와 병원 등 공공 서비스가 파행을 겪는 것은 정부의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르펜 의원은 “병원, 학교, 요양시설, 대중교통 등은 냉방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데 이 시설들은 특히 더위에 취약한 프랑스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며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국민이 더위를 견뎌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냉방이 잘되는 차량과 사무실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냉방 장비 보급률이 낮다. 에너지 비용이 미국보다 높은 데다 유럽 도시의 조밀한 건축구조 때문에 에어컨 장비를 설치하는 게 쉽지 않다. 또 역사가 깊은 파리의 건물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승인 절차도 복잡해 다수의 시민이 에어컨과 거리를 둬 왔다.
하지만 폭염이 매년 심각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 기온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상당수 지역이 40년 전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극심한 더위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에어컨은 점점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프랑스 녹색당 대표 마린 통틀리에는 르펜 의원의 ‘대규모 냉방 설비 계획’에 반대 입장을 내놓으며 도심 녹화와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 등 근본적인 기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어컨은 기후위기의 ‘응급처방’일 뿐 온난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파리시의 녹색 전환 정책을 담당하는 댄 레르트 부시장은 “에어컨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환경주의자들이 에어컨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재반박에 나서면서 앞으로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국민연합은 에어컨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제화까지 추진 중이다.
정치권의 논쟁이 확산하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의 공식 폭염 대응 지침은 중립적이다. NYT는 “정부의 관련 지침에 에어컨은 집을 시원하게 유지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지만 ‘모든 수단을 다 써본 후에 고려해야 할 해결책’이라고 하고 있다”며 “일종의 ‘중도노선’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주현 기자 jhb9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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