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동시대성으로 다가온 일본영화 뉴웨이브의 고전

조재휘 영화평론가 2025. 8. 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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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사는 초등학생 렌(타바타 도모코)은 부모의 이혼이란 현실을 마주한다.

아빠 겐이치(나카이 기이치)는 따로 집을 구해 나가고, 엄마 나즈나(사쿠라다 준코)와 둘만 생활하는 일상의 변화는 밉든 곱든 한 지붕 아래 세 식구가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던 아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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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1993)

교토에 사는 초등학생 렌(타바타 도모코)은 부모의 이혼이란 현실을 마주한다. 아빠 겐이치(나카이 기이치)는 따로 집을 구해 나가고, 엄마 나즈나(사쿠라다 준코)와 둘만 생활하는 일상의 변화는 밉든 곱든 한 지붕 아래 세 식구가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던 아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만 하다. 렌은 점점 비어 있는 가족의 자리를 견디기 힘들어 예민해지고, 학교에서도 소동을 일으키며 주변을 걱정스럽게 한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엄마와 아빠의 재결합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좋았던 옛 시절처럼 비와호수로 떠나는 여름의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영화 ‘이사’의 한 장면.


‘이사’(1993)는 촬영감독 구리타 도요미치의 감수로 35mm 필름 원본의 5K 디지털 스캔, 4K 복원을 거친 베니스 클래식 섹션 상영본으로 국내에 공개됐다. 소마이 신지는 일본영화 뉴웨이브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진 않은 감독이었는데, 뒤늦게나마 반향을 얻게 된 건 ‘해피엔드’(2024)를 만드는 데 있어 ‘태풍 클럽’(1985)을 의식했다는 소라 네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참가해 공개석상에서 “일본 바깥에 소마이의 작품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라 밝힌 하마구치 류스케 등, 후대의 감독들이 바친 애정 어린 헌사에 힘입은 덕일 것이다.

‘숀벤 라이더’(1983)와 ‘태풍클럽’ 등 소마이의 영화 속 청소년들은 보호하고 지도해줄 어른들이 없는 현실에 처해 극심한 불안과 혼란에 시달리며 방황했다. ‘이사’의 렌 역시 다르지 않다. 책임감 있는 어른의 부재. 부모는 각자의 이기적인 이유에서 별거와 이혼을 선택하고, 선생 또한 아이의 상황에 무관심한데, 이처럼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자 질서와 공동체는 무너지고 미래 세대는 그 붕괴의 잔해를 마지못해 떠안아야 한다.

렌은 엄마에게 항의하듯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 침묵의 농성을 하다 끌려 나오고, 겐이치와 나즈코가 다투는 일련의 상황을 그의 후배 둘이 목격하고 있다. 컷의 분절을 대체하는 롱테이크의 이동 촬영은 후배 두 사람에게서 움직임을 멈춤으로써 머잖아 부부가 될 이들에게도 가정의 불화가 닥칠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장래를 예감케 만든다. 엄마와 아빠를 화해시키고자 했지만 여행지에서 거리감만 확인한 렌은 숙소를 뛰쳐나가 근처의 산야를 배회한다. 호숫가에서 잠을 청하다 깨어난 그녀는 부모와 자신이 함께 뱃놀이를 만끽하며 화목한 한때를 보내다가, 배는 화염에 휩싸이고 부모는 모두 물속으로 사라지는 환상을 본다. 단란했던 그 시절과 자신은 잿더미처럼 덧없는 꿈이 됐고, 물안개처럼 스러져가는 꿈과 발 딛고 선 현실의 간극은 영영 좁혀지지 못할 것이다.


‘이사’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버린 아이의 상처에 대한 영화이면서, 그 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의 균열에 관한 영화이다. 헤이세이 불경기에 성장통을 겪은 아이는 성년이 되어 레이와 시대를 마주하겠지만, 봉합되지 못한 상처는 계속 남아서 다음 세대를 구속할 것이다. 그래서 사후적으로 ‘이사’는 일본 사회의 현재를 예견한 영화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붕괴와 상실의 풍경에 오늘날의 한국을 겹쳐보는 건 괜한 기우(杞憂)일까? 30년 넘어 뒤늦게 도착했음에도, 이 일본영화의 클래식은 시간의 간격을 넘어 동시대성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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