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독립운동가 해외 발자취를 찾아서-프롤로그] 이역만리에 남은 독립운동의 숨결…영웅들을 만나다
270명은 후손 찾지 못해 역사속 이름만
묘소 미확인 독립운동가도 420명이나
전역 잃어버린 나라 찾기 운동 ‘희생’
부모형제와 생이별 해외서도 피땀 흘려
중국 일본 물론 미국·인도네시아까지
상해 임시정부 출범 운영에 결정적 기여
한국광복군에 40명 이름 무장 투쟁 전개

다시 광복절이다. 올해는 80주년이다. 광복절은 해마다 돌아온다. 그런데 이 때만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땀과 희생, 그리고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게 아닌가.
남도일보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해외에서 활동했던 광주·전남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를 재조명 한다. 해외 독립운동가와 발자취를 찾는 건 다시는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거나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들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남도일보는 중국의 만주와 상해, 서안, 연안을 탐방했다. 또 일본 동경과 고베, 오사카도 탐방해 광주·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광복을 위해 어떤 고난을 길을 이겨냈는 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국내 독립운동 서훈 1만8천여명
독립운동가는 통상 1895년부터 1945년 8월 광복 이전까지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을 말한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올해 8월 13일 현재 대한민국정부로부터 1만8천258명의 독립운동가가 훈·포장을 받았다. 1만8천여명의 독립유공자 중 전라남도(광주 포함)에 본적을 둔 사람은 1천521명이다. 학계에서 독립운동 참여자 300만명, 순국자 15만명으로 추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다.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아 서훈이 확정됐으나 훈장을 전수받지 못한 미전수율은 40%(7천342명)나 된다. 독립 유공자 중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전수하지 못한 것이다.,
◇ 전 지역서 독립운동 참여
1만8천여명의 독립유공자 중 전라남도(광주 포함)에 본적을 둔 사람은 1천521명이다. 서훈 미전수자도 270명으로 18%에 이른다. 이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고도 후손을 못 찾아 역사 속 이름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묘소가 확인되지 않은 독립유공자도 420명(전국 8천818명)이나 된다.
독립유공자는 전남 전 지역에서 분포돼 있다. 지금은 광주광역시가 된 당시의 광주시와 광산군에 본적을 둔 독립유공자도 다수다. 지역별로 독립유공자 현황은 강진 66명, 고흥 27명, 광산(현 광주광역시) 18명, 광양 44명, 광주(현 광주광역시) 125명, 구례, 37명, 나주 118명, 담양 71명, 목포 30명, 무안 108명, 보성 59명, 순천 64명, 승주(현 순천시) 64명, 신안 4명, 여수 48명, 영광 54명, 영암 99명이다. 또 완도 91명, 장성 83명, 장흥 63명, 진도 8명, 함평 92명, 해남 85명, 화순 8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가나다 순)

◇해외 독립운동 116명 파악
광주·전남 출신들은 국내와 중국, 만주, 일본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동남아시아인 인도네시아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가도 바람도 없이 역사속으로
전남출신들은 임시정부 태동과 운영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함평출신 일강(一江) 김철 임시정부의 전라도출신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전남 도립병원 간호사 출신인 최혜순과 결혼해 상해에서 부부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장병준, 한남수 등과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전라도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외에 신정완, 나용균, 정광호, 박계천, 박진, 송식, 문덕홍 ,김재호, 안봉순 등의 전라도 의원들이 임시의정원 구성원으로 활약했다.
또 보성 출신 박문용은 보성군 겸백면장으로 재직함을 이용, 면내 공금 보관금 327원 6전을 가지고 조국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수립을 적극지원한 뒤 전라도 지역의 책임자로 귀국해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항일 무장 투쟁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40명이 광복군에 이름 올렸다. 중국 땅 서쪽의 먼 곳까지 가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위해 무장 투쟁을 한 것이다.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연합군과 공동 대일 항전 ▲국내 진입 작전을 위해 1940년 9월 17일에 창설한 군대로 중국 서안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뒀다. 이 가운데 나주 출신 나월환은 광복군 제5지대장을 맡아 광복군총사령부를 호위하면서 장병을 훈련시켰다. 역시 나주출신인 임소녀는 여성으로서 광복군 2지대에 입대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만주 지역도 독립운동 무대였다. 담양 사람인 이병묵은 형인 병욱과 함께 남만주의 관전현으로 망명한 뒤 참의부에 가입,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의열단원으로도 활동했다. 영암 출신인 이종실은 학병으로 미얀마 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하고 미군 OSS의 특수공작인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참여했다. 고흥 태생 이상문은 1944년 인도네시아 자바(Java)섬에서 연합군포로 감시 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이처럼 지역 출신 지사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장소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고, 광복은 아무런 대가없이 '나'를 던졌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의 아픔을 딛고 이역만리에 살면서 때로는 총과 칼을 들고, 때로는 맨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기간 해외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김재기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독립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같이 버리겠다는 각오로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피와 땀을 흘린 그들의 정신과 희생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명식·김성빈·임지섭 기자 msk@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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