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독립운동 심장’ 안동 임청각 8년 만에 복원 마무리

오종명 기자 2025. 8. 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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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철길로 반쪽 된 99칸 고택, 앞마당 원형·전통 한옥 구조 되살려
석주 이상룡 선생 정신 잇는 역사·문화·교육 복합공간으로 재탄생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석주 이상룡과 임청각)-일제강점기 임청각 모습
안동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자리한 임청각(臨淸閣)은 1515년 조선 중종 대에 지어진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양반 가옥이다.

한때 99칸에 달하는 이 대저택은 고성이씨 명문가의 본가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다. 그러나 100년 전 일제가 이 지역에 중앙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임청각의 앞마당을 관통하는 철길이 놓였고, 그 결과 고택의 절반가량이 훼손되어 '반쪽짜리 집'이 되고 말았다.

1910년대 초, 일제는 임청각 바로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길을 건설했다.

〈동호해람(東湖解纜)〉, 《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 임청각, 1763년
이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의 확충이 아니었다. 당시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3대에 걸쳐 약 11명에 이르는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항일운동의 심장부'였다. 일제가 철로로 가른 집, 임청각은 항일의 심장이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이끌며 일제에 맞서 싸운 지도자였다.

그가 만주로 망명한 직후 이뤄진 철길 건설은, 독립운동의 정신과 그 거점이었던 임청각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기억을 지우려는 정치적 행위였다.

철로가 놓이기 전 임청각은 낙동강변의 푸른 언덕 위에 고풍스러운 한옥의 위엄을 자랑했다. 그러나 철길 건설 이후 '절반의 집'이 된 임청각은 오랜 세월 동안 그 본래의 모습과 의미를 상실한 채 침묵해 왔다.

임청각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3대에 걸쳐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만주 등지에서 무장투쟁과 외교활동에 힘썼다. 그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총을 들었고, 펜으로는 독립정신을 전파하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임청각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투쟁의 역사를 품은 공간이었다.

서간도 바람소리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임청각을 방문해 "나라다운 나라의 출발은 임청각 복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이후, 임청각 복원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복원은 단순히 훼손된 건축물의 재건을 넘어서, 일제에 의해 지워진 역사를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특히, 철로 구간을 걷어내고 앞마당을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는 대규모 사업은 2018년 착수해 약 280억 원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임청각은 단지 TK 지역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국가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는 지역과 중앙, 과거와 현재가 역사 앞에서 화해하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를 국가 차원에서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다.

임청각 복원사업은 단순한 건축 복원을 넘어 다양한 어려움을 동반했다.

중앙선 복선화 전 임청각
특히, 중앙선 철길이 지나는 구간을 철거하는 과정은 많은 기술적 난관과 안전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했다. 철도 당국과의 협의, 역사적 고증, 문화재청의 감독 아래 꼼꼼한 복원 설계가 이뤄졌다.

또한, 임청각 내·외부 공간은 조선 중기 한옥의 전통적 건축 양식을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기둥, 서까래, 마루, 담장 등 모든 요소가 당시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목수와 보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복원 계획은 허주 이종악(1726년∼1773년)이 1763년 발간한 문집 '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 속 그림인 '동호해람(東湖解纜)', 1940년을 전후해 촬영된 사진과 지적도 등 고증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복원 후 임청각
복원사업은 총사업비 280억 원을 투입, 임청각 퇴락부분 보수, 군자정 및 사당 단청기록화 사업, 철도개설로 훼손된 임청각 주변 지형과 수목도 재정비를 완료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2018년도 부터 추진해 온 안동 임청각 복원사업이 8년간의 공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라며 "올해 하반기 임청각 역사문화공유관 건립과 전시콘텐츠 조성 등이 완료하고 광복 8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을 국민들 품에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복원 완료 후 임청각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미래 세대와 국민이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역사 공연과 전시, 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 문화 체험 사업이 연중 진행되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특히 2025년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기획된 '서간도 바람소리' 실경공연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만주 망명길과 그 정신을 감동적으로 재현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임청각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교육과 예술이 융합하는 미래 지향적 복합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임청각 복원은 지역 주민과 국민 모두에게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오랜 기간 침묵하던 공간이 복원되면서 지역 정체성과 역사 자긍심이 회복됐다.

또한, 국가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를 구체화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치유의 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과 중앙,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역사를 통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임청각 복원은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독립운동의 숨결과 민족혼, 그리고 국민 자긍심의 회복이다. 일제가 훼손한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후손과 국민이 함께 기억을 복원하는 국민적 과제이며,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임청각은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쓰여질 역사의 현장이다.

나라다운 나라의 출발점에서 다시 한 번 '임청각'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