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올 여름의 무더위, 피할 수 없다면 각자 방법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0년 전 매일신보(1925년 8월 4~7일자)에 명사들이 전하는 ‘여름 나기’ 비법이 실려 있다. 그들이 여름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그 시절의 여름으로 떠나보자.
먼저 한국화의 거장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의 이야기다. “여름 지내는 방법입니까. 그것은 각기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마는 여름 한 때는 제일 유쾌한 절기로 생각합니다. 내리쪼이는 태양의 위험에 만물이 모두 고개를 쭈그리고 헐떡이지마는 간간이 산 너머로부터 돌아드는 백운(白雲)의 기이함과 강상(江上)으로부터 오는 맑은 바람은 무한히 자비가 들은 듯합니다. 그 구름과 바람도 무서운 태양의 혹독한 열에 헐떡이지 못한 자는 그 자애(慈愛)를 모를 것입니다. 참으로 여름이란 좋은 절기올시다. 인생으로 치더라도 혈기가 왕성한 청년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화가는 재료를 구하기에도 여름이 제일이 올시다. 즉 폭포를 그리고 녹음을 그리는 것도 여름이 아니면 안 되겠습니다. 저는 올 여름에도 ‘스켓치’도 다니고 산수의 경치도 찾았지만 요전 수해 이후는 근신(謹愼)하는 뜻으로 얼마 동안 작품도 아니 하였으나 그렇다고 공부와 업을 폐할 수 없는 즉, ‘스켓치’를 또 시작하여 더위를 잊고 또는 안심을 얻고자 합니다.”
두 번째는 교육자이자 여성 운동가인 김미리사(金美理士)의 이야기다. “여름철을 누가 좋아할 것은 아니나 왜 그런지 남보다 곱 되는 더위를 타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침 변호사 문기선 씨 부인이 피서를 가지 않으려느냐고 전화를 걸은 것을 못 가겠다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물질 문제가 가로 막히고, 둘째는 경성에서 더위를 겪는 것이 낫지 피서를 하느라고 더위 길을 왕복하는 것이 곤란하여 피서는 그만 두고 단선(團扇; 둥근 부채) 한 자루로 더위와 싸워볼 작정이올시다. 그러나 부인네의 피서지로는 아마 경원선 소요산이 제일 한적하여 좋을 듯하며 더욱이 소요산의 약수는 아마 어디 어디 하는 약물보다 몇 배 좋은 줄로 압니다.”
세번 째는 이완용(李完用)의 조카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한성은행(漢城銀行) 두취(頭取; 은행장) 한상룡(韓相龍)의 이야기다. “수년 전까지도 피서도 가고 해수욕도 다니며 한 여름을 거의 여행으로 지냈습니다마는 요사이는 매우 사무도 분망하여 피서와 여행은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금년 여름부터는 집에 있어서 더위와 다투어 볼 작정이올시다. 아침 5시쯤 되어 일어나서 취운정(翠雲亭) 뒷산으로 산보를 한 후에 돌아와서 즉시 냉수 목욕을 한 뒤에 옷을 갈아 입고 은행에 나오면 한나절까지는 더운 줄을 모릅니다. 은행에서 집에 돌아가서는 책도 보고 바둑도 두며 그럭저럭하면 밤이 들어서 자는 고로 그다지 더운 줄은 모르게 되는 것이올시다.”
다섯 번째는 난(蘭)과 죽(竹)으로 유명한 서화가 송은(松隱) 이병직(李秉直)의 이야기다. “여름철 지내는 방법입니까.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붓 장난이라 할까요. 다른 선생들의 작품을 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올시다. 그런데 인간고(人間苦)와 자연고(自然苦)를 모두 잊는데 자기의 취미를 쫓아 나아가는 것이 제일인 줄로 압니다. 이와 같은 더운 날과 오뇌(懊惱)되는 세상 일에 볶일 때라도 걸작(傑作)의 서화를 대하고 연지(硯池; 벼루의 앞쪽에 오목하게 팬 곳)에 붓을 담가 말할 수 없는 그 신운(神韻;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의 무엇을 얻을 적에는 모든 괴로움이 잊히고 소위 수처생청풍(隨處生淸風; 어느 곳이든지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으로 마음도 서늘해집니다. 그러나 전무(前無)한 수해로 동포는 의식주를 잃은 이때에 예술이니 서화니 하는 것은 내심으로 미안한 줄로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는 천도교 월간잡지 개벽(開闢)의 주간(主幹) 김기전(金起田)의 이야기다. “피서고 무엇이고 경영하던 잡지는 발행 정지를 당하고 호외까지 압수가 되니 도무지 정신이 없습니다. 시간에 여유가 없는 몸이라 어디로 편하게 피서를 간다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못할 지경이올시다. 다행히 집이 삼청동 송림(松林) 밑이라 작은 틈만 있으면 틈틈이 삼청동 송림 속으로 들어가 몸도 쉬며 서늘한 바람도 쏘이고 더욱이 맑은 물에 탁족(濯足)이나 하면 그리 더운 줄도 모르게 되는 것이 올시다.”
일곱 번째는 민영휘(閔泳徽)의 아들로 한일은행 두취(頭取)인 민대식(閔大植)의 이야기다. “여름을 덥게 생각하면 덥지만 여름이라도 사람은 못 당한다는 굳센 생각만 꼭 잡고 있으면 피서니 무엇이니 아니 하고도 능히 편하게 지낼 것이올시다. 본래부터 피서니 해수욕이니 다녀 보지를 못한 사람이라 별다른 피서 방법은 없습니다만 평심서기(平心舒氣; 마음을 평온히 가짐), 이 네 자만이 나의 더위를 대하는 유일의 무기올시다. 아무리 더울 때라도 평심서기만 되면 그다지 더운 줄은 모르고 지낼 것이올시다. 더욱이 요사이는 은행 일이 바빠서 덥다는 생각을 할 여지도 없습니다.”
여덟 번째는 굳이 소개가 필요없는 이완용의 이야기다. “후작 이완용 씨의 여름살이는 이씨의 영식(令息) 이왕직(李王職; 일제 강점기 이왕가(李王家)와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 예식 과장 이항구(李恒九) 남작에게 묻게 되었다. 그늘진 수음(樹蔭) 속에 매미 소리조차 서늘한 과장실에 웃통을 벗고 앉아 서류를 보살피던 이항구 씨는 ‘네- 가친(家親)께서는 피서라고는 별로 가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다만 집에서 한정(閑靜)한 시간을 보내시는 터이라, 여름이 오나 봄이 가거나 특별한 생애는 누리시지는 않을 것이올시다. 다만 일생에 한낮의 취미로 아시는 글씨로 소일을 하시는 터이니 오늘 아침에도 식전부터 글씨를 쓰시는 것을 뵙고 왔습니다마는 대체 인내력이 많으신 어른이라 여간 더위쯤은 그다지 문제도 삼지 아니하시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각처에서 답지하는 글씨 주문에 거의 정신 차리실 틈도 없는 것 같아 어느 때에는 걱정될 때도 있었습니다. 좌우간 가친께서는 붓대와 일생의 무엇을 삼으신 이래로 여름 더위를 문제를 삼으신 일은 없습니다.”
더위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견디고 버티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혹독한 더위마저 잊게 만드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름 나기’의 가장 빼어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