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손을 잡을 때, 진짜 홀로설 수 있어요” [보호종료아동, 오늘 또 혼자가 됐다 ④]
①시설로부터 받는 후원금을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
②주변인들의 조언을 내 것으로 체화할 줄 아는 사고
③등록금·주거 문제는 내게 맞는 정책으로 해결하기
(시사저널=이태준·이강산 기자)

'보호종료아동(일명 자립준비청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적 상황은 과거보다 나아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 이제는 탁상공론을 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 청년들의 절박함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시사저널은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이되, 자립 당사자인 시설 출신 청년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오직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손에 쥐여 달라는 게 아니라 잡는 법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놓쳐왔던, 보호종료아동들이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이제 우리가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할 그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 스스로 서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 문턱이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사회적 자본을 붙잡아 단단히 뿌리 내린 이가 있다. 서울 은평구의 보호시설에서 자란 채동엽씨(2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월27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채씨는 단정한 복장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겉모습만 보면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힘겨운 자립의 그림자를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자립 과정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웃음을 거두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내미는 손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잡을 수 있다면, 자립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 그게 자립의 시작이죠."
그러면서 채씨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로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첫째, 시설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차곡차곡 저축한 것. 둘째, 자립 과정에서 주변인들에게 최대한 많은 조언을 구한 것. 셋째, 대학 진학 그리고 주거지를 구하며 국가 정책을 이용했던 게 그 해답이다.
그는 자립 정착금과 자립 수당이 본연의 목적이 아닌 '소비'로 흘러가는 현실이 속상하다고도 했다. "브랜드 옷을 사고, 준비 없이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은 시설 동료가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폭락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시설에 있을 때부터 '한 방'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정작 저축의 중요성은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자립 전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울타리 밖으로 나오세요"
채씨는 자립의 시작점을 '사람'에서 찾았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주변인을 시설에 있을 때부터 확보한다면, 자립은 생각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설에선 심리 상담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안나오는 분들이 많아요"라고 말한 그는 시설에 몸담아 봤던 입장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채씨는 한때 구청 자립지원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안타까운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교통비 지원 등 자립준비청년에게 도움되는 정책을 안내해도 돌아오는 건 "그만 연락해달라"는 말이었다. "자신의 상황을 숨기고 싶어서 그래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거죠. 하지만 결국 자립의 성패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어요. 자신을 인정해야 다른 것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 문제다. 채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도시주택개발공사(SH)에 자립준비청년 전형이 따로 있기에 이를 활용하기를 권한다. 100만원의 보증금만 있으면 되고, 다른 전형에 비해 채택이 수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2년씩 3번을 갱신해 최대 6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채씨는 "LH엔 유스타트(Youth+Start)라는 상담 센터도 있어요. 이곳에 전화하면 잘 설명해 줍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 역시도 성공적으로 자립하기 전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동료 자립준비청년보다 많은 멘토링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것 같다는 이유로 시기 어린 질투도 받아봤고, 학창 시절엔 동급생과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런 채씨가 사회에서 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이었다. 믿을 만한 어른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됐다고 한다.
이제 채씨는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멘토링 아르바이트만 세 곳에서 하고 있고,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시설 출신이라는 꼬리표보다 스스로의 이야기로 삶을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약 한 시간의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후배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차분히 말했다.
"시설에 살다 보면 울타리 안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본인이 얼마나 빨리 깨닫는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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