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원의 울림] 150년前 작곡가 파멸시킨 '카르멘'… 오페라의 대명사 됐다
1875년 3월 파리 첫 공연 때
관습 어긋나 '비도덕적' 비난
낙담한 비제, 심장마비 사망
별세후 재조명받으며 각광
베로나 페스티벌 대표작으로
올해 전세계 극장에서 공연
국내선 10월 대구오페라축제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오페라 축제가 한창인 이탈리아 베로나의 고대 원형극장. 오후 9시 넘어 시작한 공연이 무르익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카르멘'의 대표 아리아 '하바네라'가 흘렀다. 객석 곳곳에선 콧노래가 터졌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새'라는 가사와 매혹적인 선율로 카르멘의 치명적 매력이 분출되자 관객들도 이미 그녀에게 푹 빠진 듯했다.
2막의 그 유명한 '투우사의 노래' 합창 부분에선 은은한 떼창마저 나왔다. 무용수들의 화려한 플라멩코와 박력 있는 손짓·발구름까지 더해져 흥이 올랐다.
보통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극장 객석에선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지만, 한여름 야외 공연장에서 아름다운 음악은 몸도 마음도 풀어지게 했다. 카르멘은 스페인 남부 세비야의 고혹적인 집시이자 여러 남자를 유혹하는 팜파탈이다. 얽매일 생각 없는 카르멘과 그를 사랑하게 된 순진한 군인 돈 호세 사이의 갈등, 집착, 살인 등이 4막에 걸쳐 전개된다.
베로나 아레나의 카르멘은 특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년) 등을 만든 전설적 이탈리아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1995년 첫 오페라 연출작이다. 화려하고 사실적인 대규모 연출은 직후 대호평을 받으며 베로나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초연 이후 15시즌에 걸쳐 160회 이상 공연된 것으로 전해진다. 첫 장면부터 무대에 집시, 군인, 귀족, 어린아이 수백 명과 말 9마리까지 올라 19세기 세비야의 북적이는 광장을 재현한다. 이날 카르멘 역을 소화한 러시아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는 아레나를 압도하는 폭풍 성량을 자랑했다. 돈 호세 역 프랑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에스카미요 역 이탈리아 바리톤 루카 미첼레티도 호연을 펼쳤다.
올해 이 작품이 더 특별한 건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7~1875)의 서거 150주년이자 초연 150주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 중 하나지만, 1875년 3월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첫선을 보인 당시엔 비평가와 관객 모두 외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습에서 벗어난 것투성이였다. 지고지순 남자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관이 대세였던 시대에,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여주인공은 '비도덕적'이라 받아들여졌다. 주인공이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인 작품 역시 흔치 않았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비제는 크게 낙담했고, 그해 6월 파리 근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카르멘이 재평가를 받은 건 그의 죽음 이후 빈과 브뤼셀 등 다른 유럽 도시 공연을 거치면서다. 철학자 니체나 동시대 작곡가 브람스, 생상스 등이 찬탄했고, 훗날 차이콥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작품이 담아낸 격정적인 드라마는 이탈리아 거장 푸치니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걸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뜬 작곡가 본인에게만 비운의 작품으로 남은 셈이다.
올해 카르멘은 세계 곳곳에서 다채로운 프로덕션으로 만날 수 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오는 10월 시작해 내년 1월까지 링컨센터에서 캐리 크랙넬 연출 버전을 선보인다. 시공간을 21세기 미국 산업도시로 옮겨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색다른 작품이다. 카르멘을 비롯한 집시는 여성 노동자로 설정했고, 청바지 차림의 카르멘이 공장이나 트레일러트럭 화물칸을 배경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 베를린 도이체 오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도 하반기에 카르멘을 공연하는 대표적 극장들이다. 베를린에선 올해 10~11월 총 4회 공연이 예정됐다. 노르웨이 연출가 올레 아네르스 탄드베르그가 연출한 피비린내 날 듯한 기괴함이 특징적이다. 시드니의 카르멘은 호주 출신 앤루이스 사크스의 새로운 연출로 지난 7일 개막해 다음달 19일까지 선보인다. 독일의 그리샤 아사가로프가 연출하는 프라하 공연은 이달 28일 시작해 이번 시즌 동안 카르멘을 향한 군인 돈 호세의 광기의 사랑을 보여준다.
국내에선 지난 6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이 작품이 올랐다. 또 10~11월 개최되는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중 10월 16과 18일 대구오페라하우스, 11월 2일 대구 동구 아양아트센터에서 영남오페라단의 '카르멘'이 무대에 오른다. 카르멘 역에 이탈리아 출신 알레산드라 볼페와 손정아가 나눠 출연하고, 돈 호세 역은 신상근·박신해·차경훈, 에스카미요 역은 최진학·제상철 등이 맡는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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