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포비아’에 멈춘 현장...공급 차질 비용 상승 우려

박상길 2025. 8. 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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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연합뉴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점검이 끝날 때까지는 일단 (공사는) 중단이죠. 중단된 만큼 준공도 입주도 지연된다고 봐야 하고…. 원래 예정대로면 이번주 초 현장에 필요한 자재 주문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현장이 멈추다 보니 주문도 미뤘어요.”

“공사 중단 지시가 떨어져서 중단은 했는데, 공사 재개 후 늦춰진 일정만큼 무리해서 서두르다 보면 사고 위험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 벌써부터 염려도 되네요.”

대형 건설사가 운영 중인 수백 개의 건설 현장이 ‘산재(産災) 포비아’에 부닥치며 완전히 멈춰섰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처벌을 예고하자, 건설사들이 긴급 안전 점검에 들어가며 공사 진행에 속도를 늦추고 있다.

특히 현장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시공 현장의 공사를 중단키로 한 포스코이앤씨의 아파트 시공 현장과 대표이사를 비롯해 전임원과 팀장, 현장소장이 전원 사표를 제출한 DL건설의 아파트 공사 현장의 경우 공사 중단 기간 만큼 입주 시기가 늦어질 수 있어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주길 바라는 정부 요구에 발을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7위의 포스코이앤씨는 103곳의 현장 공사가 중단에 들어갔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한 사업장이다. 준공을 앞뒀거나 인허가 절차 막바지인 사업장에서는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맞느냐”는 조합과 예비 입주자들의 항의가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공사를 중단한 포스코이앤씨를 시공사에서 교체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L건설은 대표부터 현장소장까지 경영진이 모두 사표를 제출했으며 44곳 현장을 모두 중단시키고 안전 점검 중이다.

DL이앤씨도 모든 시공현장의 공사를 중지하고 안전 점검에 들어갔으며 최고안전책임자의 승인을 받은 사업장만 공사를 재개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올해 진행 중인 80개 사업장 중에서 11곳이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아파트 시공 현장은 5곳이다.

건설업계는 산재 사고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현장에서는 안전 점검에 초점을 두고 조금이라도 위험이 감지되면 바로 작업 중지에 들어가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사들이 공사를 망설이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올 하반기 분양도 불투명해졌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당초 하반기엔 전국 156개 단지에서 13만7796가구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올해 상반기 공급 물량인 7만1176가구의 2배에 육박한다. 하반기 분양 물량은 수도권이 8만9067가구로 전체 물량의 약 65%를 차지한다.

그러나 기존 6·27 부동산 대책과 ‘산재 포비아’에 따른 강력한 처벌 예고가 겹치면서 아파트 분양 경기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분양전망지수도 낙관적이지 않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8월 전국 아파트 분양 전망 지수는 7월 대비 21.9포인트 하락한 75.1을 기록했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분양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업자가 더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특히 수도권 전망지수가 지난달 113.9에서 이달 81.4로 32.5포인트 급락했다.

건설업계는 정부와 정치권이 건설업의 특수성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배제하고 무조건 강력한 처벌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만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지방의 경우 건설사들이 부동산 PF 부실화와 미분양 등으로 자금난과 수익성 추락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서울과 수도권도 최근 수년간 오른 공사비 등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재건축 현장마다 갈등이 불거지고 심지어는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가운데 현장 상황의 특수성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산재 등을 두고 입찰자격 영구박탈까지 언급하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민간 건설업체로 하여금 건설현장에서 떠나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사를 꺼리는 건설사들이 늘어나면 내년부터 공급 부족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공급에 필요한 시간 확보, 재원 마련, 부지 물색, 민간 건설업체의 적극적 참여 등이 모두 갖춰져야만 공급 확충을 위한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데, 산재 사고로 면허취소와 입찰 금지 처벌까지 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사를 진행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코이앤씨만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산재 파동은 주택 공급 감소와 공사비 상승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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