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 산책] 현대미술의 문을 연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강현철 2025. 8. 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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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1899년. 캔버스에 유채. 74 x 93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예술가들의 예술가’·‘현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인상파 넘어 대상의 본질 표현을 추구

평생 사과에 집착, 야수파와 입체파에 영향

피카소·마티스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인류의 3대 사과’라는 얘기가 있다. 첫째는 성경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그리고 마지막은 ‘세잔의 사과’다.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 ~ 1906년)은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다.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않는 작품이지만, 사과 하나로 20세기 회화의 씨를 뿌린 ‘현대 미술의 아버지’란 평가를 듣는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던 그는 40년동안 사과를 그려 미술의 역사를 바꿨다. 그림은 사물의 본질을 담아야 한다며, 모델로 삼은 사과가 썩을때까지 그리고 그렸다.

세잔은 인상주의가 매너리즘에 빠진 데 대해 저항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꼽힌다. 쇠라, 고갱, 고흐, 로트레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잔은 모네를 이어받아 인상주의를 ‘세잔식’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20세기 전반 회화의 양대 산맥을 이룬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마티스와 입체주의(큐비즘)를 대표하는 피카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벌이던 피카소와 마티스는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1899년 그린 ‘사과의 오렌지가 있는 정물’은 그의 대표작이다. 높이 솟아오른 과일 접시, 왼쪽 과일 접시와 오른쪽 물병. 얼핏 보면 특별한 게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좀 더 주의깊게 본다면 이전 그림들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화가의 시점(視點)이 대상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보고 그린 사과, 옆에서 본 사과 등 사과별로 다 다르다.

말년에 그린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도 접시에 담긴 쿠키들은 시점과 비례가 다르고, 와인 병은 비뚤어졌다. 사과들은 앞쪽으로 기울어진 바구니속에 담겨 있다.

한 시점에서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 알베르티의 ‘회화론’ 이후 화가들의 금과옥조였다. 세잔은 이를 깨부셨다. 두 눈을 이용해 위 아래 옆 등 다시점으로 사물을 보고 마치 몽타주들을 이어붙인듯 이를 한 화면에 표현해낸 것이다. 대상과 세상을 보는 ‘창문’(윈도, 프레임)을 깨뜨린 셈이다. 왜 그랬을까? “(빛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파처럼) 순간의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잔은 사과가 가진 여러 빛깔, 형태, 변화를 한 화면에 담아 사과라는 물체에 담긴 본질의 표현을 추구했다. 이는 인상파와 달리 형태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어졌으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분석해 그리는 화풍으로 그를 인도했다. 평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잔은 처음으로 두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미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후대 화가들에 예술의 자유를 선물한 것이다.

본질을 향한 탐구는 도형으로 이어진다. 세잔에게 형태의 본질은 도형이었다. 모든 사물은 원기둥, 구, 원뿔로 대체할 수 있다. 사과는 구, 주전자는 원통, 오렌지 그릇은 뒤집힌 원뿔이었다. “나는 자연에서 원통, 구, 그리고 원뿔을 본다”고 세잔은 말한다.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그의 그림에 대해 당대 화단은 조롱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런 기하학적 해석은 입체파의 피카소와 브라크에 이어진다. 브라크 “세잔의 작품을 발견하자 모든 것이 뒤집혔다.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고 외쳤다.

‘생트 빅투아르산’. 1890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세잔은 프랑스 남부 해발 1011m의 생트 빅투아르산을 좋아해 80여편의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을 남겼다.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산의 본질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소나무는 원기둥, 산은 원뿔로, 집과 벌판은 사각형 입방체에 가깝게 보인다. 정물화로 단련된 내공을 기하학적 풍경화로 넓혀 자연의 속살을 담는데 성공한 것이다.

세잔은 1939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으나 곧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콜 드 보자르)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서 좌절을 겪는다. 그는 파리의 박물관에서 바로크 시대를 연 카라바조, 사실주의자 쿠르베, 낭만주의를 이끈 들라크루아 등의 작품을 10년간 모사하며 그림을 공부한다. 20대 중반부터 공식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번번히 낙선한다. 살롱전에서 상을 받은 건 18년의 도전 끝인 마흔셋의 나이때다.

그를 진정한 화가로 이끈 건 아홉살 연상인 화가 카미유 피사로였다. 세잔은 “너그러운 신과 같은 사람”인 피사로에게서 인상주의에 눈을 떠 ‘자연’과 ‘빛’을 그림의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한 살 아래인 모네와도 친했다. 그에게서 인상주의의 근본 원리를 깨쳤다. 하지만 이내 인상주의의 한계를 깨달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물, 나무, 건초더미 등 사물의 형태가 파편화돼 사라지며, 자연의 속살을 놓치게 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게 ‘영원한 인상주의를 만들고 싶다’며 자연의 껍데기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를 추구하는 동력이 됐다.

세잔은 이후 자연을 관찰하고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탈피해 마음과 머리속에 생각한 ‘본질’을 그리는 것으로 전환했다. 자신만의 화풍을 만드는 데 나선 것이다. “나는 박물관의 예술처럼 견고하고 영원한 인상주의를 만들고 싶었다”며 맨 처음 내놓은 작품이 ‘에스타크의 바다’다.

‘에스타크의 바다’. 1883~1886년. 캔버스에 유채.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공모전을 멀리하고 1877년 38세때 파리를 떠나 자신의 고향에 칩거한 세잔은 29년간 홀로 은둔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 구축에 매진한다. 말년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연작에 몰두했다. 과감하게 단순화한 인물과 풍경이 특징이다.

‘대수욕도’. 1898~1905년. 캔버스에 유채. 210.5 x250.8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폐렴으로 세상을 뜨기 전 7년동안 매달린 ‘대수욕도’(목욕하는 사람들)는 ‘조화와 균형’을 갖춘 인물화를 구성하기 위한 세잔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사람도 나무나 구름처럼 하나의 구성물이 돼 인간의 개성은 사라졌다. 또 그림에는 무수한 삼각형이 숨겨져 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2년 후 최초의 입체파 그림으로 평가되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선보인다.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907년. 캔버스에 유화. 뉴욕 현대미술관.


‘실패한 화가’라는 좌절감을 갖고 살았지만 세잔은 “참다운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평생 추구하며 ‘관찰’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모네는 “우리 모두 중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말했고, 세잔의 작품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던 폴 고갱은 “세잔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화가”라는 유서에 남겼다.

비평가들은 세잔의 작품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세잔에 대해 “한결같은 사람으로, 완고하고 강인하다. 어떤 것에도 무릎꿇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림에 재능이 없었던 세잔은 40여 년간 은둔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예술가들의 예술가’가 됐다.

평론가 조원재씨는 “모네가 카메라 연사로 빛의 변화를 잡아냈다면 세잔은 완벽한 구성을 가진 단 한컷을 작품으로 만들었다”며 “땅위에 집을 짓듯 캔버스위에 그림을 건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4~1895년.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강현철 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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