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경주여행 9 경주의 해파랑길

강시일 기자 2025. 8. 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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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청정바다길 45㎞ 따라 천연기념물 주상절리와 절경, 호국의 성지 줄지어
경주 울산과 경계마을 지경리 해변의 경치.
천년고도 경주에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45㎞에 이르는 청정바다와 연접한 해파랑길이 있다. 경주 바닷길은 천연기념물 양남 주상절리를 비롯한 용굴, 해국길 등의 절경도 좋지만 기림사와 골굴사, 감은사지에 이르는 호국사찰, 문무대왕 수중릉이 주는 호국의 이념도 깊게 서려 있다. 또 왜의 침략에 대비해 신라 만리장성으로 쌓은 관문성, 무장공비 소탕을 기념해 세운 전적비, 신라 석탈해왕이 용성국에서 상륙한 터를 기념해 건립한 석탈해유적비와 같은 기념비도 있다. 최근에 조성한 골프장과 해수욕장,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리모델링한 카페, 사진찍기 좋은 100대 명소에 선정된 송대말등대 등이 즐비한 해파랑길은 경주여행의 자랑이다.
양남면 수렴항의 군함바위와 바위섬.

◆양남의 나폴리

경주 양남은 울산과 경계를 이루는 지경에서 시작된다. 철조망에 가려져 있던 물개바위와 같은 절경이 드러나자 대기업들이 몰려와 연수원을 우후죽순격으로 설립하면서 새로운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지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어진 관성해수욕장도 전국에서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명소다. 해안 절경은 양남 나폴리 수렴항으로 이어진다. 수렴항구를 에워싸고 있는 바위섬들의 포진은 나폴리라 불릴 만하다. 섬처럼 백여 덩어리의 바위군상들이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듯 뾰죽뾰죽 머리를 내밀고 파도를 맞으며 하얗게 웃어대는 모습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군함바위와 제멋대로 자란 바위들의 머리는 버텨온 세월을 이야기하듯 갈매기들이 뿌려놓은 하얀 물감으로 파뿌리가 되었고, 억세게 버티고 살아온 몸뚱이는 거뭇거뭇하게 태양에 그을려 야무지게 보인다. 바위섬들은 어떻게 보면 육지로 뛰어드는 야수의 포효하는 입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라 박제상의 부인 망부석 같기도 하다. 쇠심줄을 드리우는 강태공들은 그대로 해변의 수채화가 된다.
경주 천연기념물 양남면 주상절리군. 부채꼴 주상절리.

◆천연기념물 양남 주상절리군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경주 양남 해안에 형성된 기둥모양의 바위 주상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하신 몸이다. 주상절리는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에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되면서 형성된 바위다. 신생대 말기에 양남지역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은 흔히 관찰되는 수직주상절리는 물론 경사지거나 심지어 누워있는 주상절리까지 발달해 눈길을 끈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희귀한 부채꼴 주상절리와 같이 다양하고 독특한 주상절리들을 형성해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한다. 양남의 주상절리는 읍천항에서 하서리까지 약 2㎞ 해안을 끼고 파도소리길을 조성해 쉽게 관찰할 수 있게 했다.
경주 문무대왕수중릉의 남쪽 500m 지점 가미새바위.

◆문무왕릉과 문무대왕유조비

주상절리에서 해파랑길을 따라 북쪽으로 차를 몰아 5분 거리에 문무왕수중릉과 진짜 문무왕릉으로도 전하는 가미새바위, 문무대왕유조비가 이어진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전쟁으로 굴복시키고, 당나라를 몰아내면서 통일신라를 세웠다. 문무왕은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을 한다"며 칼을 들었다. 문무왕은 청년의 시기부터 아버지 김춘추 무열왕, 외삼촌이었던 김유신 장군과 나란히 말고삐를 잡고 전장을 누비며 호국의 길을 걸었다. 삼국을 통일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바다의 용이 되어 백성들을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니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했다.
삼국통일을 이룬 676년을 기념해 676㎝ 높이로 건립한 경주 신라문무대왕유조비.

신라문무대왕유조비에 새긴 '문무왕 유언'은 "나는 국운이 어지럽고 전쟁하는 시대를 당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쳐서 능히 강토를 평정하고 ... 중략... 율령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거든 곧 고치고 원근에 포고하여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이는 이를 시행하라."고 새겼다.

경주시는 문무왕의 유언을 '신라문무대왕유조비'에 한글과 한자로 새겨 2021년 4월에 수중릉이 바라다보이는 대본초등학교 부지에 삼국통일을 이룬 676년을 기념해 676㎝ 높이로 건립했다.
경주 국보 감은사지 삼층석탑.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하며 건립한 감은사.

◆감은사와 이견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이 동해가 바라보이는 곳에 왜병을 진압하는 군사적 목적으로 '진국사'를 건설하던 중에 죽자 이를 계승해 공사를 완공하고 '감은사'로 고쳐 불렀다. 감은사는 동해로 흘러드는 대종천변에 지어졌다. 금당터 아래 용혈, 구멍을 뚫어 용이 된 아버지가 금당터로 들어와 쉴 수 있게 했다고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감은사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폐사되었지만 금당터의 돌기둥들이 쌓인 특이한 건축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문무왕의 수중릉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정자 이견대가 서 있다. 문무왕이 죽어 용이 되었는데 그 용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던 곳을 이견대라 부른다. 감은사를 완공한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내려준 만파식적과 옥대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이견대에 서면 수중의 문무왕릉과 감은사가 보였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감은사가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감은사와 문무왕릉이 한눈에 연결되었다고 전한다.

이견대는 대종천이 토함산에서 발원해 감은사를 휘돌아 동해로 이르는 막바지 언덕에 위치해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 수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사계절 찾는 발걸음이 붐빈다. 문무왕릉 앞에서 시작되는 봉길해수욕장도 크게 호안을 그리면서 이견대까지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다.
경주 전촌리의 경주 출신 정귀문 작가의 바다가육지라면 노래비.

◆바다가육지라면

문무왕릉과 5분 거리의 전촌솔밭 나정고운해변은 토함산터널이 뚫리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경주보문관광단지에서 감포 해안까지 30분이면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어 감포를 찾는 발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바다를 끼고 남북으로 연결되는 전촌리 진입로에 이르면 도로 양쪽으로 훌쩍 키가 큰 송림이 우거져 차를 세우고 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오른다. 여름에는 송림 깊숙이 야영하는 텐트들의 울긋불긋한 천연색 지붕을 보게 된다. 차창을 열라치면 고기 굽는 냄새가 상큼한 바다냄새와 어울려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솔밭 그늘 어느 곳에라도 차를 세우고 바다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발가락을 파고드는 고운 모래밭 너머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풍경에 넋을 잃게 된다. 전촌솔밭과 바다 사이에 넓게 조성된 주차장에서 고운 모래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바다가 육지라면' 이라는 글을 새긴 큼직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경주 출신 정귀문 작가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노랫말을 착상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돌비석이다.

'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중략)...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한이 서린 노랫말이 노래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바다가 육지라면 이라는 억측이 개입된 노래가 불려지기 시작한 지 세월은 반백년이 넘었지만 아직 바다는 그대로 바다로 남아 그날처럼 파도는 육지로 육지로 바람을 실어올 뿐이다.
감포 해안가의 용굴.

◆용굴과 송대말등대

경주 감포는 용굴과 개항 100면을 맞은 감포항, 1970년대 정서가 남아있는 건물들, 송대말등대의 절경이 경주여행객들의 발길을 꾸준히 유혹하고 있다.

송대말. 소나무와 등대가 있는 끝마을이다. 감포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나가는 출구다. 바다와 육지의 처음이자 끝이 되는 곳이다. 감포와 바다가 깍지를 가장 깊게 끼는 핵심이다. 송대말이 중지가 되어 바다 깊숙이 깍지를 끼고 있는 부분이 송대말이다.

송대말에는 7개의 등대가 북두칠성으로 깜박이며 24시간 감포를 지키고 있다. 바다 가운데 우뚝 선 푸른 등대는 만선의 꿈을 안고 출어한 감포사람들의 귀항을 안내하는 좌표가 된다. 북쪽의 해양수산부가 세운 등대는 감은사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석탑형 등대이지만 지금은 등대박물관으로 체험행사의 콘텐츠로 더 유명하다.
감포 송대말등대 끝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바다수족관.

송대말에 들어서면 훤칠하게 키 큰 200년은 넘은 듯한 소나무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 위에 바람을 안고 서 있다. 절벽 아래 리아스식해안의 섬을 닮은 바위들이 조각작품으로 파도를 뿜어내고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파편들은 수증기로 비산하며 역사처럼 흔적없이 사라진다.

절벽을 붙잡고 찔레꽃이 피어 있다. 간간이 해국들이 조명등처럼 고개를 내밀어 카메라맨들의 시선을 잡는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등대는 몸통이 사라지고 부식된 철근이 오래된 시간의 흐름을 전하고 있다. 무인등대도 하얗게 밤을 밝히며 송대말 땅 끝에 서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인들이 감포 전복과 돌미역, 참가자미 등의 싱싱한 수산물을 저장했던 수조가 아직 해수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송대말 끝부분의 무인등대 앞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100선으로 선정한 곳으로 누구나 포즈를 잡고 '김치'를 먹게 되는 경주여행의 대명사다.

*이 글은 역사문화도시 경주를 소개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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