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에 민감해진 유럽, “민간 과학 연구비, 군사 연구 개발로도 쓰기 시작해”
“과학 연구, 군 겸용으로 활용”

최근 유럽이 민간 과학 연구를 진행할 때 연구비를 군사 연구 개발(R&D)로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1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보도했다.
유럽은 오랫동안 이렇게 민간 과학 연구를 군용 연구 개발로도 활용하는 이른바 ‘이중연구’를 기피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흔들리는 모습까지 보이자, 최근 몇년 사이에 EU 지도자들도 방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는 “그 결과 최근 민간 과학 연구 자금이 군사 방위 재원에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썼다.
◇군사 목적 연구 기피하던 유럽, 달라졌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해양 융합 연구센터(ENSTA Bretagne)는 최근 바다에 떠 다니는 ‘자율 부유 로봇(ROV)’ 무리를 활용해 거대한 해저 음향 안테나를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로봇들이 수중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상호 통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해류 연구나 해양 포유류 추적을 위해 시작됐지만, 최근엔 군사 안보를 위한 해상·수중 상황 감시에 쓰이는 방안으로도 같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학계는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군사·민간 연구를 엄격히 구분해왔다. 학문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각 대학들도 ‘민간 연구 조항’을 채택하고, 군사 겸용 연구는 사실상 금지하는 분위기였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작년부터다.
지난해 독일 연방연구기술우주부는 이같은 ‘민간 연구 조항’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민간과 군의 협력 연구를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폭발물·추진체 화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의 토마스 클라프쾨케 교수는 “요즘엔 과학 연구비의 상당수가 독일 국방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는 2022년 아예 군사 목적으로 ‘토털 디펜스 센터’라는 이름의 연구 센터를 출범시켰다. 2022년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 이후 연구자 50여 명의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센터다. 법학자인 안니나 페르손 교수는 “사이버 보안, 재난 복원력,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방산기업들과 대학이 지식을 교류하고 연구 개발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지난 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750억유로를 들여 2028년부터 EU의 핵심 과학 연구 지원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도 민간·군사 겸용 연구를 지원한다. 지난 40년 동안 EU가 민간 과학 연구 분야를 주로 지원했던 것을 깨는 변화다. 코펜하겐대의 캐서린 리처드슨 교수는 “그동안은 군사 목적이 포함된 과학 연구는 진행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반대가 됐다”고 했다.
◇연구계에선 반발과 우려
연구계에선 반발의 목소리도 나온다. 24개 대학이 속한 유럽연구대학연맹(LERU)의 쿠르트 데케텔레르 사무총장은 “여전히 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은 민군 겸용·군사 연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순수 민간 연구는 그대로 놔두고, 군사·겸용 연구는 별도의 유럽방위기금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 맞다”는 입장도 펴고 있다. 민간 과학 연구를 군사 연구로도 활용할 경우엔, 보안의 문제 등으로 학문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가령 ‘호라이즌 유럽’에 참여하는 EU 회원국이 아닌 21개 연계국(affiliate countries)도 이렇게 되면 앞으로 보안·정치적 이유로 일부 프로그램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단체인 ‘사이언스 포 피스 포럼’도 이같은 ‘이중용도 연구’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과학이 전쟁에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과학과 군용 연구의 경계가 흐려지면 국제 협력이 위축될 뿐 아니라 기후변화 같은 긴급 과제 해결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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