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시작 ‘미국버거 맛집’…味친 맛의 비결은 신토불이[언박싱 프로-맥도날드]
맥도날드 형제 아이디어, 세계적 브랜드로
파트너·공급사 잇는 ‘세다리 의자’ 철학
1988년 우여곡절 끝에 한국 1호점 오픈
개점 5개월만에 버거 판매량 100만개
韓 로컬버거 115종…“한국인 입맛 저격”

어느 날 밀크 셰이크 믹서 판매 회사에 전화가 한 통 걸려 옵니다. 무려 믹서를 6대나 주문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보통 매장에는 1~2대만 있어도 충분한 상황. 영업사원이었던 레이 크록은 단순한 주문 실수로 여겼습니다. 바로 잡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죠.
역시나 가게에서는 “우리가 주문을 잘못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믹서 6대가 아니라 8대를 갖다 달라”는 더 황당한 답변을 내놓은 겁니다. 도대체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 것인지 믿기지 않았죠.
먼 길을 달려 크록이 도착한 곳은 바로 레스토랑 ‘맥도날드’였습니다. 가게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단 30초 만에 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음료가 제공됐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도 당시 다른 가게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맥도날드를 키운 레이 크록에 대해 다룬 영화 ‘파운더’의 초반 줄거리인데요. 도대체 맥도날드 레스토랑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믹서 영업사원이었던 크록은 어떻게 맥도날드를 프랜차이즈로 만들었을까요. 이번 주 ‘언박싱 프로’에서는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날드’에 대해 다뤄봅니다.

형제가 연 레스토랑, 영업사원이 키웠다
전 세계 100여개국 3만60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맥도날드.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맥도날드 형제’입니다. 이들은 1937년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을 개점했는데요. 처음에는 핫도그 가게였습니다.
하지만 1948년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3개월간 레스토랑을 닫습니다. 빠른 서비스 시스템, 공장식 햄버거 제조 방법, 셀프 서비스 방식 등을 고안해 냈죠. 마침내 그해 12월에는 ‘셀프 서비스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으로 다시 문을 엽니다. 대표 메뉴는 15센트짜리 햄버거였습니다.
시스템은 당시 미국의 드라이브 인 식당들과 차이가 있었는데요. 고객이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기다리면 종업원이 직접 주문받으러 나갔고, 다시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받기까지는 최소 30분 이상이 걸렸죠.
하지만 맥도날드는 달랐습니다. 고객이 직접 식당 창가로 오도록 유도해 효율성과 속도를 높였습니다. 주방 동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30초 만에 햄버거 하나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접시나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고 종이로 포장했고, 쓰레기도 고객이 모두 스스로 정리해 버리는 시스템이었죠.
크록은 맥도날드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가게를 찾은 그는 맥도날드 형제에게 매장 내부를 소개받았고, 창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맥도날드 형제에게 감명받은 크록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떠올립니다. 당시 그의 나이 52세입니다. 오랜 설득 끝에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최초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매장을 여는 데 성공합니다. 첫날에만 366.12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큰 성공을 거두어 불과 5년 만에 점포 수는 200개가 됐습니다.
크록은 ‘사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by yourself), 본인을 위해 하는 것(for yourself)이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남겼습니다. 크록의 신념은 프랜차이즈 파트너, 공급업체가 의자의 세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맥도날드가 튼튼하게 바로 설 수 있다는 의미의 ‘세 다리 의자(The Three-Legged Stool)’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맥도날드가 오늘날의 프랜차이즈 표본이 되고,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장하게 된 비결입니다.

자장면 누른 햄버거…압구정 휩쓴 맥도날드 1호점
한국에 맥도날드가 진출한 것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입니다. 새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압구정동에 점포를 열었는데요. 매장 옥상에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로날드 맥도날드’의 대형 풍선 인형이 설치돼 상징성을 더했습니다.
오픈 직후부터 압구정점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섰고요. 대학생, 직장인, 가족 단위 고객 등 다양한 연령층이 매장을 찾아 활기찬 분위기를 이뤘습니다.
압구정점은 짧은 시간 안에 인상적인 기록도 세웠습니다. 개점 후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누적 버거 판매량이 100만개를 돌파했습니다. 하루 평균 1500~2000명 이상의 고객이 매장을 찾았고요. 압구정점은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호점 개점 이후 압구정동에는 맥도날드 바람이 매일 거세게 불었습니다. 660㎡, 126석 규모의 매장은 늘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평일에는 8000~9000명, 주말에는 무려 1만5000여명의 고객이 맥도날드를 찾았습니다. 인도까지 길게 늘어선 행렬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지방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맞은편 한양쇼핑센타 주차장까지 몸살을 앓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당시 800원 정도였던 자장면이 외식의 전부였던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죠. 2400원이었던 빅맥은 자장면 한 그릇의 무려 3배 가격이었습니다.
맥도날드 1호점 덕분에 국내 식품 업계에도 ‘맥도날드 붐’이 일었습니다. 버거용 패티 납품업체는 제품 공급을 위한 공장을 새로 준공했고, 소시지 등 육가공 시장도 활기찬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유제품 및 제빵업체 등도 배송 시설을 새로 갖췄습니다.
국내 식품업계는 맥도날드 매장이 꾸준히 늘어나 납품 물량이 증가하는 낙수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심지어 선진 기술 지도를 통해 제품의 질까지 높일 기회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한국 진출 검토만 ‘세 차례’…1호점 상륙 비하인드
사실 1호점이 상륙하기까지 많은 곡절과 사연이 있었습니다. 되짚어 보면 1988년 1호점 오픈에서 무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0년대 말부터 ‘맥도날드 글로벌 본사’는 한국의 시장을 조사·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검토를 거친 끝에 ‘시기상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경제 규모나 시장 상황을 볼 때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한국 진출은 보류됐습니다.
1970년대에는 한국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GNP(국민총생산)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국민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외식문화의 싹도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맥도날드도 이런 한국의 상황에 다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때마침 한국에서 맥도날드와 합작을 희망하는 기업이 나타났습니다. 맥도날드는 해당 기업의 제안을 받은 뒤 세심한 검토를 재개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은 10년 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될 만큼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외식산업도 이전과는 달리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습니다. 맥도날드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뒤, 해당 기업과의 합작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979년 8월의 일입니다.
이후 맥도날드와 한국 정부 간의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외국 기업이 진출하려면 반드시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합작 투자 계약서, 라이선스 계약서에는 수많은 조건이 따라붙었습니다. 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만 수백 페이지에 달했습니다.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문제나 원재료 수급, 고용 방법 등에서 이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사업 절차나 환경은 미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악재가 발생했습니다. 1980년, 해당 기업이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파산하고 만 것입니다. 파트너를 잃은 맥도날드는 또다시 한국 진출의 꿈을 미뤄야 했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이 1988년 올림픽과 198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된 것입니다. 대규모 국제대회를 개최할 만큼 한국의 경제 규모나 위상도 상승했습니다. 그 무렵, 맥도날드도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1982년, 맥도날드는 세 번째로 한국 진출을 검토했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정도의 국가라면,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국내 제휴선을 찾기 위한 사전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맥도날드는 자료 수집 및 데이터 분석에 세심한 공을 들였습니다. 의사 결정을 위한 조사 활동은 지나쳐 보일 정도로 꼼꼼했습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한국에서는 맥도날드가 매우 신중한 기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맥도날드의 움직임은 한국의 대기업들에도 전해졌는데요. 굴지의 기업들이 맥도날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인 맥도날드와 합작을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규모가 큰 대기업이 선정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합작 파트너로 선정한 곳은 기업이 아닌, 개인이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결정이었습니다.

빵부터 패티까지…맥도날드 ‘맛’의 비밀
음식인 만큼 ‘맛’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매장이 있는 만큼 ‘같은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맥도날드는 최상의 품질 유지를 위해 조리 시간, 재료의 정량, 신선한 재료 사용 원칙 등을 포함한 ‘골드 스탠다드(Golden Standard)’ 기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미리 제품을 만들어두지 않고 주문 즉시 조리하는 ‘메이드 포 유(Made for You)’ 시스템도 운영 중이죠.
버거에서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는 빵입니다. 맥도날드는 글로벌 소비자 조사를 거쳐 겉은 윤기 나고 속은 부드러운 번이 이상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런 번을 만들기 위해 글레이즈 코팅과 토스팅 방법을 찾았습니다. 글레이즈 코팅은 보기에도 좋고 뜨거운 열기와 수분을 그대로 가둬 촉촉하며 폭신한 식감을 제공합니다.
한국맥도날드는 베스트 버거를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버거 번을 개발했습니다. 아시아에서 베스트 버거를 출시하면 한국맥도날드의 버거 번이 표준으로 사용됩니다. 베스트 버거는 식재료와 조리 프로세스, 조리 기구 등 전반적인 과정을 개선해 더 맛있는 메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맥도날드의 글로벌 이니셔티브입니다. 맥도날드가 진출한 100여개 국가 중 버거를 주식으로 즐기는 고객이 많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 먼저 도입됐고요. 한국맥도날드는 전 세계 네 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최초 도입됐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맥도날드 사랑’이 눈에 띄었던 거겠죠.
한국에서 시작된 버거들도 있는데요. 한국 최초의 로컬 버거는 너무나도 익숙한 ‘불고기 버거’입니다. 1997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맥도날드를 찾은 고객의 인기 버거 메뉴 1위는 로컬 메뉴인 ‘불고기 버거’가 차지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로컬 버거가 개발됐고,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들도 다양하게 생겨났습니다.
보통 로컬 버거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약 9개월에서 1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1997년부터 2022년까지 만들어진 로컬버거는 115종으로, 약 100년이 소요된 셈입니다. 지금까지 국내 맥도날드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버거 순위에는 대부분 로컬 버거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 듯합니다.
‘한국의 맛(Taste of Korea)’ 프로젝트 역시 국내에서만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맥도날드는 식재료의 품질을 높이고 차별화된 맛을 선사하고자 매년 해당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죠. 2021년 8월 ‘창녕 갈릭 버거’로 시작해 국내 지역 특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량의 농산물 수매를 통해 지역 상생을 실천하고 있답니다. ‘한국의 맛’ 메뉴는 식재료 선정, 지역 파트너십 구축, 메뉴 개발 등 전 과정을 포함해 평균적으로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쳐 출시됩니다. 지역 선정은 단순한 식재료의 품질뿐 아니라, 지역 농가의 협력 의지, 생산 및 유통 역량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루어집니다.
또 널리 알려진 특산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 식재료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발굴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맛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된 제품으로는 ‘창녕 갈릭 버거’, ‘보성녹돈 버거’,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 ‘진주 고추 크림치즈 버거’ 등의 버거 메뉴가 대표적입니다. 올해도 익산 고구마를 활용한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치즈 버거’를 내놓았죠.
한국맥도날드는 한국의 맛 프로젝트 외에도 양상추, 계란, 닭고기 등 버거 주요 재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연간 1만4000톤이 넘는 양의 국내산 식재료를 수급하고 있습니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와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머핀’ 2종으로 익산시에서 약 200톤의 고구마를 수매하며 프로젝트 역사상 최대 물량 수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답니다.
1988년 ‘힙스터들의 성지’ 압구정을 휩쓸었던 맥도날드. 이제는 매일 40만명, 연간 2억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외식 브랜드로 거듭났는데요.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가 들어왔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외식 브랜드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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