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알리기도 어려웠던 외교… 이젠 유럽이 먼저 손 내미는 시대
<7> 외교: 외면 받던 과거 딛고 K외교로
韓, 아시아파워지수 7위·강대국 지표 6위 올라
EU, 한국과의 외교협력 위해 지속 '러브콜'
국제무대서 역사해석, 대북제재 모니터링 주도

지난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가 열리기 한두 달 전 유럽 국가들은 한국을 초청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벌였다. 옵서버 자격이었지만, 한국의 외교적 중요성과 방위산업 역량 등을 높이 평가해 반드시 초청하고 싶은 국가로 첫손에 꼽았다는 후문이다.
비록 대내외 여건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을 결정했지만, 유럽 의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을 위해 여전히 한국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방산 협력'을 위한 협의 때문이다. 그 결과 나토와 한국 간 국장급 방산협의체가 오는 9월 출범한다.
네덜란드 헤이그는 120여 년 전 고종 특사 이준 열사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국제사회에 인정받지 못한 한이 서린 곳이다. 당시 열강국가들의 냉대로 이준 열사는 회의에 참석조차 못했다. 하지만 이제 헤이그의 외교무대에서 한국은 가장 먼저 초청하고 싶은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유럽은 "한국을 위해 일본의 지배가 더 나은 선택"이라며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열강국이 경쟁을 벌이는 약소국이자, 중국과 일본 사이 완충지대로 인식될 뿐이었다.
아시아파워 지수 7위... 국제문제 의제 제시

광복 이후 8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호주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가 발표하는 '아시아파워 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 7위에 올랐다. 아시아파워 지수는 아시아태평양 27개국의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경제관계 등 8개 분야에서 국가 영향력을 종합평가한 지표다. 로위연구소는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국가 중 5번째로 강한 외교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 헤지펀드 투자자 레이 달리오가 분석한 '강대국 2024 지표'에서도 한국은 미국, 중국, 유로존, 독일, 일본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관으로서 프랑스 파리로 향한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항고서(청원서)'를 내고 일제의 주권 침탈과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공작과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의 외면으로 한국 문제는 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의제를 앞장서 제시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이사국에 세 번째로 활동하게 된 한국은 사이버안보와 신흥기술과 관련한 국제 규범을 의제화하며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4월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의 불법 사이버활동에 초점을 둔 회의가 최초로 우리 제안으로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인공지능(AI) 서울 정상회의'를 주최했고, AI의 안전한 활용과 국제협력을 강조한 '서울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활동을 무력화하자, 주도적으로 참여해 11개국이 힘을 모은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을 신설했다.
한국 외교력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핵심 사례는 단연 한일 역사전을 들 수 있다. 일본으로부터 지배받던 약소국가였던 한국은 최근 국제 무대에서 '피해자 중심적 역사분쟁 해결 방법론'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유네스코에는 한국 주도로 '해석전략(전체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 방법론을 연구하는 협의체가 신설됐다. 역사 분쟁이 있는 유산에 대해 기록을 어떻게 남길지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담론을 주도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WHPIC)를 국내에 설립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 패싱'은 없다


약 70년 전 한국은 열강국에 한마디 의견조차 내지 못한 채 남북으로 나뉘는 분단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담론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보다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한국을 무시하고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방법이 경제적·정치적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벌어질 가능성이 이제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한국의 외교 역량이 확인됐던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최근 본보에 "북핵 6자회담 플랫폼의 성과 중 하나는 한미관계 인식이 '큰 형-작은 동생'에서 '주권평등한 동맹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이라며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사이를 적극 조율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한미동맹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1953년 이래 미국과 대한민국 간 동맹은 동북아시아,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그 너머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 축이 돼 왔다"며 "글로벌 문제들은 미국과 다른 협력국가들의 주도적 노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은 그 노력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치소 독방서 아침 맞은 김건희, 첫 끼니는 '1733원' 식빵·딸기잼 | 한국일보
- 김건희, '남편 없는' 서울남부구치소 2평 독방 수감 | 한국일보
- [단독] 계엄 당일 법무부 '출국금지팀' 현장 대기…박성재가 호출 정황 | 한국일보
- 경복궁에 잘린 손이?... 팀 버튼의 '웬즈데이' 이번엔 1위 할까 | 한국일보
- 반클리프 목걸이, 바쉐론 시계… 고가 장신구에 발목 잡힌 김건희 | 한국일보
- [단독] 김예성 "김건희 집사 아냐… 누나-동생 사이, 재판 뒤 절연" | 한국일보
- 김건희 구속한 특검, '영부인 국정농단 전모' 밝힌다 | 한국일보
- 신분 노출 의식? '복면 골프' 권성동, 통일교 소유 골프장서 포착 | 한국일보
- '원폭 상흔' 히로시마 옆마을에선... 욱일기 꽂힌 카레를 판다 | 한국일보
- 100년 전 한국에 냉랭했던 파리… 지금은 한류에 열광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