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넘어 이어지는 것들…이진주 개인전 ‘불연속연속’

김현경 2025. 8. 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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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개최
연작 ‘셰이프트 캔버스’·‘블랙 페인팅’ 등 54점
이진주 작가의 개인전 ‘불연속연속(Discontinuouscontinuity)’이 13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LEE Jinju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흰색 장막에 커다란 바위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모를 인물이 놓여 있다. 그 장막을 가린 앞의 장막에는 또 다른 바위가 있고, 다시 장막과 바위, 식물, 인물, 사물들이 중첩돼 있다. 사선 방향으로 줄지어 배치된 여섯 개의 장막은 각각 독립된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이나 막대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이진주 작가의 개인전 ‘불연속연속(Discontinuouscontinuity)’이 13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이진주는 갤러리 전관에 걸쳐 선보이는 54점의 신작 및 근작에서 전통 채색 기법에 기반한 세밀한 필치로 일상에서 마주한 낯선 장면과 대상, 풍경을 포착한다.

작품에서 인물과 돌, 나무 등 각각의 대상들은 실제처럼 매우 정교하고 뚜렷한 필치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대상들 간 관계는 막 같은 구조나 손, 얼굴 등 신체의 파편으로 형상화돼 단절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슬픔과 돌’은 가로 386㎝, 세로 322㎝에 달하는 캔버스에 그린 실험적 작품이다. 여백이 되는 부분을 잘라내 형상의 윤곽을 살린 작가의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연작 중 가장 큰 규모다. 여섯 개의 장막이 늘어선 작품은 평면의 그림이지만 입체처럼 느껴지고, 캔버스 위 여백이 소거됨으로써 작품 밖까지 공간이 확장돼 배경마저도 작품으로 포섭한다.

이진주 작가가 11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이 작가는 11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막은 어떤 무대나 껍질 같은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얇은 막이지만 버티고, 그 사이에 끼어 있고, 서로 밀어내기도 한다”며 “분절된 것 안에서 이어지는 수많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동양화에서 그렇듯 그의 작품에서도 여백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백을 제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형상은 보다 거대하게 확장되고, 2차원의 그림은 3차원의 입체성을 갖게 된다.

이는 그림을 그리기 전 갤러리를 여러 차례 둘러보고 작품의 전시 공간을 염두에 두면서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는 “평면 회화 작품이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이 공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이 된다”며 “(전시장의) 벽을 볼 때 내 그림 속의 화면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품 자체가 여러 면으로 구성된 입체 회화도 다수 전시된다. ‘겹쳐진-사라진’은 두 개의 기다란 직사각형 패널이 맞닿도록 결합한 뒤 조각적으로 세워 놓은 작품이다. 오목한 안쪽 공간에는 거대한 돌을 안은 인물을 그려 넣었다. 열린 공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작품은 특정한 방향에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구조로, 대상의 외양과 내면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진주 ‘비좁은 구성’. [©LEE Jinju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 선보인 ‘비좁은 구성’은 배치 공간을 달리해 다시 소개된다. 이 작품은 네 폭의 가로로 긴 캔버스가 짧은 변을 둘씩 맞대고 사각의 링 형태를 이루는 입체 회화다. 사각 링의 안팎에 놓인 화면 모두에 그림을 그려 넣은 양면화로, 네 개의 모서리에 기둥을 세워 캔버스들이 바닥에서부터 약 1m 떠오른 높이에 위치하며 바닥에 흑경을 둬 내부의 그림들이 어렴풋이 비치도록 연출했다.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부분들의 조합이고, 그 부분들의 조합조차도 굉장히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재구성이 아닐까라는 생각한다”며 “하나의 몸이면서도 결국에는 그 이면에 있는 장면을 볼 수 없고, 하나의 시선에서는 왜곡된 방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고 이 작가는 설명했다.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 연작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굉장히 짙은 검정색 바탕에 파편화된 신체의 일부나 사물을 배치해 집중도를 높인다.

‘대답들’은 여러 모양의 손을 그린 29점의 블랙 페인팅을 하나의 구조로 엮었다. 4행 8열의 격자 형태 중 3개의 자리를 의도적으로 비워놨는데, 이 부분은 ‘아직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 대답하지 않은 대답’을 내포한다는 부연이다.

이진주 ‘대답들’. [©LEE Jinju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이진주의 작품은 직설적이라기보다 은유적이다. 그는 “내 작업은 많은 것을 굉장히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많이 가리고 있기도 하다”며 “동양화에 ‘은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가려지기 때문에 오히려 극대화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손’도 많은 것을 말해 주지만, 얼굴보다는 덜 직접적이라 자주 선택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존재와 부재, 연결과 단절을 통해 ‘불연속적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자신, 딸로 이어지는 세대들, 삶 속에서 목격되는 존재와 사물, 사건 모두가 각자 고유하면서도 연속성을 품고 있다는 주제 의식이 작품을 관통한다.

이 작가는 “우리가 현재를 사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시공간들과 늘 마주하고 있다”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연속에 가까운 것 같다. 불연속을 뛰어넘으면서 이어지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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