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실서 시작된 한국어 도전… “이중언어 챔피언 될래요”[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김린아 기자 2025. 8. 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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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중도입국 청소년 적응지원 ‘초록빛 이음교실’
부모님 따라 해외서 온 아이들
주4회 하루 2교시 한국어 수업
예절·문화 배우며 적응활동도
수업서 익힌 내용 실전서 활용
매주 심리상담으로 자신감 충전
교내 이중언어 말하기 우승자
“겁내지 말고 직접 말해보세요”
중도입국청소년들이 2024년 7월 ‘초록빛 이음교실’에서 열린 한국어 수업(초급반)을 듣고 있는 모습. 초록우산 제공

“제 마음속에 좋은 추억들이 가득합니다. 그중에도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서울 한 중학교에서 열린 교내 이중언어 말하기대회. 중도입국 청소년(해외 거주 후 청소년 시기 한국으로 들어온 청소년) A(16) 군의 입에서 한국어와 중국어가 울려 퍼졌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A 군은 서툴지만 중국 친구들과의 추억을 한국어로 이어갔다. 발음 하나하나 신경을 쓰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청중은 귀를 기울였고, A 군은 20여 명의 참가자 중 1등을 차지했다.

A 군은 입국 초기 낯선 환경과 언어 장벽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친구들과 대화 중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복지관 ‘2025 중도입국 청소년 적응지원 프로그램 초록빛 이음교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주 4회 열리는 수준별 한국어 수업과 한국 생활 적응을 돕는 문화 활동, 그리고 이중언어 심리상담이 A 군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수업 시간에는 문법과 단어를 배우고, 수업이 끝나면 강사와 함께 실제로 지역 식당을 찾아가 주문과 인사를 연습했다. “작년엔 대회가 있어도 ‘나는 못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던 A 군은 “두려웠지만 도전했고,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서울 서남권인 영등포구와 구로구·금천구는 서울에서 외국인과 다문화가정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24년 기준 영등포구의 등록외국인만 2만2000여 명으로, 서울 자치구 중 두 번째로 많다. 특히 대림동은 중국계 주민이 밀집해 있어 중도입국 청소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 미숙, 문화 차이, 심리적 불안, 부모의 장시간 노동에 따른 돌봄 공백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동시에 겪는다. 기존 지원 기관들이 있지만,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방학 중엔 수업이 끊겨 학습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초록빛 이음교실’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 이음교실은 한국어와 문화 적응, 심리 지원을 한 공간에서 통합 제공해 중도입국 청소년의 언어·심리 발달을 돕는다. 수준별 한국어 교육(초급·중급)이 주 4회 하루 2교시씩, 연간 668시간 열린다. 문화 적응 활동 시간에는 한국 예절과 생활 문화를 배우고, 수업에서 익힌 표현을 바로 써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어가 아직 서툰 아이도 실제 상황 속에서 말해보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아이들의 심리 치료 지원을 위해 주 1회 이중언어 심리상담과 미술치료도 이뤄진다. 언어 수업, 상담 등 활동에 투입되는 강사와 상담사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해, 갓 입국한 아이들도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다.

이곳에서 A 군처럼 자신감을 되찾은 학생들이 더 있다. 처음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질문을 피하던 B(13) 군은 신체활동 위주의 단체 활동을 통해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제는 수업 시간에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번역기 없이 한국어로 일상을 나눈다. 주 1회 B 군의 심리상담을 맡고 있는 상담사는 “B 군의 표현력이 풍부해졌다”고 전했다.

같은 중도입국자로 언어도, 문화도 아직 서투르지만, 아이들은 서로를 도우며 그 빈틈을 채우고 있다. 한국어가 서툰 친구의 말을 대신 전해주거나, 어려운 단어를 함께 찾아 알려주는 일은 일상이다. 신체 반응이 느린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고 함께 속도를 맞춘다. 이음교실 활동 수업의 한 강사는 “이곳 아이들은 경쟁보다 ‘같이 가는 것’의 가치를 더 잘 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아이들의 성장을 도왔다. 지역 청년단체와 기업의 후원을 통해 식사와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매달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모여 준비한 중국식 가정식으로 차린 ‘이음밥상’을 나눠 먹으며 ‘식구’라는 따뜻함을 더한다.

영등포의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도전은, 언어를 넘어 자신감을 배우고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있다. A 군은 교실에 다니며 꿈이 생겼다고 한다. 서울시 이중언어 말하기 페스티벌에 출전하는 것이다. 또 그는 자신처럼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틀릴까 봐 겁내지 말고, 직접 말해보세요. 두려워도 도전하면 생각보다 잘할 수 있어요.”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린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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