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그림자에 키스하는 환자도 있었다” 나이팅게일[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서 비롯돼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흑해 북쪽 연안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170년 전에도 크림반도를 놓고 프랑스·영국·오스만제국과 충돌했다.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벌어진 크림전쟁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크림전쟁이 한창이던 1854년 11월 간호대 38명을 조직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영국 야전병원으로 향했다. 34세 때였다. 영국군은 사상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었다. 전투에서 사망한 전사자가 5000명이었던 반면 콜레라 등 전염병에 감염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는 병사자는 3배인 1만5000명에 달했다.
야전 병원은 참담한 상황이었다. 바닥엔 오물이 넘치고 쥐·벌레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했다. 나이팅게일은 훗날 “유럽 대도시 최악의 지역에 있는 집들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곳 막사 병원의 밤 상황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가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위생 개선이 시급했다. 나이팅게일은 청소와 세탁부터 시작했다. 환자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침대 시트를 청결하게 관리했다. 환자 수와 질병 종류를 의무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했다. 밤에는 등불을 들고 환자의 상태를 돌보고 다녀 ‘등불을 든 천사’라고 불렸다. 반년 만에 42%에 이르던 환자 사망률이 5%로 떨어졌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마음가짐도 강조했다. “병실 환기를 게을리하는 것은 환자를 독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고칠 수 없으면 참아야 한다’는 격언은 간호사에게 가장 나쁘고 위험하다”고 했다. 전쟁 기간 800쪽이 넘는 통계 보고서를 썼다. 종전 후엔 사망자와 부상자 수 등의 통계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보여주는 ‘로즈 다이어그램’(rose diagram)을 발표했다. 기부금을 받아 런던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세웠다. 그가 쓴 ‘병원에 관한 노트’와 ‘간호 노트’ 등은 여러 나라로 전해져 간호사 양성을 위한 기초 교재가 되었다.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까닭이다.

나이팅게일은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조선일보 1930년 3월 15일 석간 4면은 ‘위인의 사생애(私生涯)’ 시리즈 기사에서 나이팅게일의 생애를 상세히 소개했다. 제목은 ‘박애(博愛)의 권화(權化)인 나이튕겔 양, 구십년을 독신생애로’였다.
기사는 “병사들은 나양(나이팅게일 양)을 천사처럼 신성히 여겨 그가 납촉(蠟燭)을 손에 들고 병상으로 돌아다닐 때는 그 후자(後姿·뒷모습)를 바라보고 절을 하며 또는 그 그림자에 키쓰를 하는 이까지 있었다”면서 “긴 생애를 고독하게 지내인 여사의 생활이야말로 신(神)에 가까운 것이니 인류애의 위대한 정신력이 성애(性愛)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이 나양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적었다.

세계 적십자사의 탄생은 크림전쟁에서 헌신한 나이팅게일에게서 비롯됐다. 국제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은 “내가 적십자를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은 크림전쟁에서 보여준 나이팅게일의 희생과 봉사 정신 때문이었다. 적십자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이다”라고 했다.
지금도 간호사가 되려는 이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이팅게일은 1975년부터 1994년까지 영국 10파운드 지폐 인물이기도 했다. 여성이 파운드 지폐 인물이 된 첫 사례였다. 이후 교도소 개선에 힘쓴 엘리자베스 프라이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5파운드 지폐에 쓰였고, 2017년 ‘오만과 편견’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10파운드 지폐 인물로 등장했다.

나이팅게일이 1910년 8월 13일 숨지기 직전 침실에 누워있는 사진이 2008년 경매에 나오기도 했다. 당대 사진작가 리지 캐스월 스미스가 찍은 것이다. 스미스는 사진 뒷면에 ‘파크레인 근처의 자택에서 그녀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 찍었다. 이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자필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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