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난 오늘도 시장밥집을 찾아 헤맨다

관리자 2025. 8.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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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재료에 ‘본연의 맛’ 살린 한식
힘들고 이문없어 밥집아줌마 사라져
한식의 정수 ‘백반집’ 온기 되살려야

오래전의 일인데, 내가 청담동이란 동네에서 주방장을 맡았을 때 신기한 일을 많이 겪었다. 나는 이른바 ‘양식’ 요리사여서 어떤 패턴을 요구받았다. 스테이크와 으깬 감자, 아스파라거스와 줄기콩, 데미그라스 소스라거나 디종 머스터드 소스의 샐러드에 연어 스테이크 같은 메뉴였다.

이탤리언 식당이라면 피자와 미트소스 토마토 스파게티가 필수였다. 손님이 원하는 메뉴가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정형화된 메뉴가 어떤 암묵처럼 ‘고오급’ 양식시장에 정해져 있었다. 다른 메뉴를 한다는 건 미친 짓 같았다. 장사해야 먹고사는 양식당 사장도 그런 룰을 깨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 틀을 깨고 싶었다. 요즘은 흔해진 말인데 ‘그때그때 나오는 재료로, 제철에 맞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대단한 깨우침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그쪽이 재료비가 싸게 먹히고 무엇보다 맛이 좋았던 까닭이었다.

생각해보라. 유럽 어디선가 데쳐서 냉동한 후에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서 들어오는 줄기콩과 단단하게 얼린 연어 토막, 어딜 씹어도 비슷비슷한 맛이던 수입 소 안심 같은 게 무슨 특별한 맛이 있었겠는가. 양식을 먹네, 고급 식당에서 즐겼네 하는 고정적인 기쁨 외에 음식이 주는 생동감 같은 건 눈을 씻고서도 보이지 않던 때였다. 그게 서로 편했고, 원하는 바였다. 말장난을 하자면 ‘양식(洋食)의 양식(樣式)화’로 정해진 룰이었달까.

내가 처음 주방장이 되고서 짠 메뉴는 이랬다. 어느 봄날이었을 거다. ‘강원 고성 왕문어찜과 충남 서산 조개즙 소스에 냉이 데침. 고추장과 으깬 토마토로 맛을 낸 강달어 조림.’ 그때 문어는 아주 쌌고, 조개는 만원짜리 두어장이면 가마니로도 살 수 있었다. 강달어야 그 계절의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면 나무상자째로 쌓여 있었다.

후숙이 잘돼서 금세 터질 지경이던 토마토는 사는 손님이 있으면 업어줄 것 같은 표정의 상인이 팔고 있었으니까.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재료비가 수입품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는 꽤 영악한 편이었는데, 시장을 그렇게 흔들어보려고 했다. 싸고 만만한 재료가 오히려 맛도 좋고 이문도 많이 남는다는 것을 간파한 셈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약간의 외면을 지나 식당이 아주 잘됐다. 맛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손님들도 오래된 패턴의 양식에 질려버린 참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었다. 요즘은 제철 재료니 로컬푸드니 하여 너르게 알고 있는 요리 방식이고 소비 형태지만 불과 이십여년 전만 해도 맹아기였던 개념이었다. 오죽하면 한식 말고는 일년 내내 메뉴가 똑같다는 말이 있었을까.

그렇다. 한식은 요리사에게 주는 영감이 있었다. 한식이야말로 일년 내내 메뉴가 달라지는, 제철에 가장 적합하게 돌아가는 동네였다. 어디 한 상에 몇십만원짜리 한정식집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알던 한식은 시장에 나오는, 앞에서 썼던 ‘그때그때’ 나오는 재료가 원천이었다. 그게 무슨 제철과 로컬푸드의 개념까지 가져와서 설명할 일인가. 싸고 맛있으니까 당연지사였다.

더 오래전 이탈리아에서 잠깐 요리 공부를 할 때로 시계를 돌려보자. 이탈리아에 가기 전에는 양식과 이탈리아 음식이란 아주 고정되고 좁은 시야 안의 존재였다. 그곳의 현장에서 놀란 것은 매일 시장에 나오는 재료에 따라 새로운 메뉴를 만들었다. 냉동 아스파라거스도 줄기콩도 데미그라스 소스도 수입 냉동 안심도 아닌, 그 동네에서 잡히고 농사짓는 게 식당 메뉴에 올랐다. 메뉴가 ‘오늘의 메뉴’ 한가지인 곳도 흔했다. 메뉴판이 없고, 웨이터가 입으로 메뉴를 읊었다. 그날 준비한 음식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좀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그게 세상의 많은 식당들이 쓰는 방식이었다.

장에 나가서, 그날 나온 재료를 사서, 요리하고 판다. 식당이 굴러가는 아주 오래된 룰이었다. 한식도 그랬다. 어느 날 가보면 오이와 양파를 무치고, 새우젓에 볶은 애호박이 나오고, 여름부추 넣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묵은 김치가 몇쪽 들어간 콩나물국이 있는가 하면 칠게볶음과 고사리나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나. 그게 대단한 고려가 있다기보다 제일 싸고 맛있는 만만한 재료라고 해도 큰 실례는 아닐 것 같다.

로컬푸드, 제철 재료는 요리판에서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불과 이십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뿌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밥집이다. 시장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밥집을 한다. 한 상에 만원짜리. 싸고 맛있는 재료에 밝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학술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푸드 마일리지’ 같은 것도 그들에겐 생활일 뿐이다. 시장 좌판에 나오는 재료가 백 걸음만 걸으면 나오는 식당의 부엌에서 요리로 바뀌는 것이니 말이다. 푸드 마일리지라는 말조차 오히려 어색한, 일상의 풍경이 바로 백반이다.

내 별명 중 하나가 백반주의자인 것도, 그런 데서 출발한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백반. 이 말은 이제 검색어로 잡힐 정도가 됐다. 시장에는 백반집이 있다. 반찬 백가지(아주 많다는 뜻으로 100)여서 백반, 하얀 밥이 나와서 백반이라는 그 음식은 한국 음식의 가장 정확한 형식과 내용을 담는다.

국과 찌개와 김치와 반찬들. 우리가 친근하게 부르는 밥집 아줌마는 그러니까, 한식의 계승자이고 전도사이며 제철과 로컬푸드 연구자이고 푸드 마일리지 단축 기록 수립자이며, 거창하게 말하면 철학적 스승이라는 의미로 구루다. 철마다 나오는 수천가지 재료와 그 재료의 원산지에 따른 맛의 미세한 차이, 거기 어울리는 양념을 줄줄 외는 사람이 밥집 아줌마 말고 누가 있을까.

슬프게도 그런 훌륭한 밥집 아줌마들이 사라져간다. 힘들고 이문 없고 재료 손질도 어렵고 하루 종일 새벽부터 노동해야 하는 일을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

같은 한식이라도 고깃집 같은 것들을 하지 누가 백반집을 하겠는가. 방송에서 난리가 나서 ‘이모카세’가 되지 않으면 대우도 못 받는 전국의 이모들.

밥집과 백반집의 온기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밥집이 어느 날 덜컥 유행하는 인스타 신상 맛집의 간판으로 바뀌는 게 온당한 세상일까. 오늘도 시장밥집을 찾아 골목을 헤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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