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사학자 "무장 항쟁이 내적 투쟁이었다면, 외교는 대외 전선이었다"

김형준 2025. 8. 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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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문명적 독립운동'이었으며, 독립 이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일원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팡테온 앞 마들렌 드 상리스(madeleine de senlis) 호텔에서 만난 재불 독립운동사학자(파리7대학 박사과정) 이장규(58)씨는 "오늘날 우리는 외교 독립운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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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 K도약 리포트]
<7> 외교 : 외면 받던 과거 딛고 K외교로
재불 독립운동 사학자 이장규씨 인터뷰
"해외 독립운동사 연구 위한 재정·학술적 지원 필요" 호소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 팡테옹 인근 옛 '고려통신사' 건물 앞에서 만난 재불 사학자 이장규씨. 파리=김형준 기자
"외교는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문명적 독립운동’이었으며, 독립 이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일원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팡테온 앞 마들렌 드 상리스(madeleine de senlis) 호텔에서 만난 재불 독립운동사학자(파리7대학 박사과정) 이장규(58)씨는 "오늘날 우리는 외교 독립운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호텔은 1900년대 초 파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설립한 '고려통신사'가 있었던 곳이다.

그는 "외교는 눈에 보이는 전투나 희생이 없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거나 ‘성과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많았다"며 "무장투쟁이 영웅적 서사로 구성되기 쉬운 반면, 외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설득과 협상, 기다림의 연속이기에 드라마틱한 서사에 덜 어울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외교 강국으로 거듭난 우리 정부가 그 뿌리와 활약상을 재조명하는 것엔 인색한 데 대한 아쉬움을 전한 것이다 .

이씨는 "임시정부가 처했던 현실을 생각할 때, 외교는 단순한 수단이 아닌 '존재의 조건'이었다"며 "무장 투쟁이 대내적인 투쟁이라면, 외교는 세계에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리는 대외적 전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임시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계 열강에 인정받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외교는 독립운동의 핵심 전략 중 하나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은 1920년 12월 펴낸 책자 '구주의 우리사업' 서문에서 "세계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유럽인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군사가 필요한 만큼 외교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유럽 외교 최고 성과, 한국친우회 결성지는 현판도 없어

이장규씨가 프랑스 마른주 문서 보관소에서 찾은 1920년 스위프 지역 한인 명단. 이장규씨 제공

그러나 여전히 외교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거나 이를 기록하는 데는 관심이 부족하다. 임시정부 대(對)유럽 외교 최고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유럽 내 '한국친우회' 설립지는 여전히 장소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거나, 현판 하나 제대로 붙어있지 않다.

국가보훈부는 영국 한국친우회 창립총회가 열린 런던 웨스트민스턴궁 '하원 6호실'을 해외사적지로 소개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여러 제약이 있어 자유로운 조사활동과 사진 촬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직접 찾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안에 들어가도, 어느 곳이 우리의 사적지인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프랑스 한국친우회가 설립된 파리 사회박물관도 상황은 마찬가지. 건물 밖에 현판도 걸려 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씨는 유럽 내에서의 독립운동사 확인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파리 정보경찰이 1919~1920년 작성한 베트남 독립운동가 호찌민(1890~1969) 감시보고서를 통해 김규식, 조소앙, 황기환, 윤해 등 임시정부 인사들이 호찌민과 교류한 자료를 발굴했다. 프랑스 마른주 문서 보관소에서는 1920년 소도시 스위프(Suippes)의 한인 명단을 발견하는 등 사료 발굴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씨는 "프랑스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의 경제 성장 및 문화적인 영향력 증가로 양적이나 질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이뤘지만, 애석하게도 독립운동사 연구 분야는 기관 및 연구자들 그리고 학생들의 관심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했다. 그는 "연구 환경이 나아지질 않으니 (학자를) 잡기도 어렵다"며 "해외 독립운동사 연구 전반의 활성화를 위해 재정 및 학술적 지원, 그리고 한국 내 여러 연구자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의 하원의원 창문을 스케치한 모습. 영국 한국친우회가 이곳 '하원 6호실'에서 창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궁 내부 일부만 개방돼 있고 현판도 붙어 있지 않아 역사 현장을 찾는 한국인들은 정확한 위치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파리·런던=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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