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내조’는 없었다…김건희, ‘그림자 실세’의 몰락
부속실 거치지 않고 ‘자기 정치’ 계속…국민의힘도 ‘전전긍긍’
尹 3번 법안 거부로 특검 피했으나…계엄·파면 후 결국 구속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2021년 12월2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부디 노여움을 거둬달라"며 이같이 약속했다.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허위 이력' 논란 등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지자 '조용한 내조'를 다짐한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7개월 여, 김 여사의 약속은 허언이 된 모습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김 여사가 구속되면서다. 이로써 김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특검 수사 결과 김 여사가 권력의 그림자 뒤에서 사익을 추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애초부터 '조용한 내조'의 의지조차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건희'라는 이름이 정치 뉴스에 등장한 건 2019년 7월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오르면서다. 그 무렵부터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먼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김 여사가 기획한 전시회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특검이 다시 살펴보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이때 처음 불거졌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2021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김 여사의 과거를 둘러싼 갖은 의혹이 연이어 불거졌다. 그 때마다 국민의힘은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라며 방어했다. 그러나 김 여사가 대학·기업에 제출한 이력서에 허위 이력이 기재됐다는 의혹까지 불거지자, 김 여사는 결국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당시 "국민을 향한 남편의 뜻에 제가 얼룩이 될까 늘 조마조마하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김 여사가 다짐했던 '조용한 내조'는 남편이 대권을 잡자 자취를 감췄다. 김 여사는 첫 해외 순방 당시 민간인을 수행직원으로 동행시켜 '비선 논란'이 일었다. 남편과 별개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코바나컨텐츠 직원들과 방문하기도 했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팬클럽을 통해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여사의 외부 행보가 번번이 논란을 부르자 여권 내부에서도 김 여사를 보좌할 공식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공약한 '제2부속실 폐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 사이 '감시받지 않는 권력'의 부작용은 계속됐다. 2023년 11월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지만 현직 영부인을 겨눈 검찰의 칼끝이 무디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이 지난해 7월 김 여사를 서초동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 경호처 부속건물에서 비공개 조사하고 하루 뒤 이를 공개하면서 '황제 출장조사' 논란이 일었다. 이후 김 여사는 지난해 10월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여론은 악화했다.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김 여사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 차원의 해명, 사과 등을 거듭 촉구했으나 부인을 향한 남편의 신뢰는 두터웠다. 김 여사를 겨냥한 '김건희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세 차례에 걸쳐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그 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방어했다. 윤 전 대통령은 KBS와의 단독 대담 방송을 통해 아내를 둘러싼 명품백 수수 논란 등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변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권력이 무너지면서 김 여사를 둘러싼 상황은 급변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통과한 특검법에 따라 김건희 특검이 지명되면서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이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김 여사에 대해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12일 발부했다. 이로써 김 여사는 윤 전 대통령과 함께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같은 시기에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김 여사는 2009~2012년 발생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돈을 대는 전주(錢主)로 가담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9명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고, 법원은 김 여사 계좌 3개와 모친 최은순씨의 계좌 1개가 시세조종에 동원됐다고 판단했다.
2022년 재·보궐선거와 작년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2022년 4~8월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통일교 측으로부터 교단 현안을 부정하게 청탁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도 있다. 아울러 특검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 양평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 여러 기업에서 184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모은 '집사 게이트' 의혹 등도 들여다보고 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구속영장에 제시된 3대 의혹에 대해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현재 피의자가 가지고 있던 꽃은 다 떨어졌다. 그 어떠한 권세나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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