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디자이너들과 ‘계급장’ 떼고 붙어...서체 디자인의 허브서 ‘한글’로 인정받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서체를 파고들게 됐어요. 요리사가 재료에 관심 갖는 것처럼요. 스위스로 와 보니, 자기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것이 가장 창의적이란 걸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 6월 스위스 연방 문화부가 주최하는 ‘스위스 디자인 어워즈’ 그래픽 디자인 부문 수상자로 한국의 그래픽·서체 디자이너 김민종(31)씨가 선정됐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김 디자이너는 스위스 디자인 명문 로잔예술대학(ECAL)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스위스의 유명 디지털 타입파운드리 라인투에 재직 중이다.


1918년 제정된 ‘스위스 디자인 어워즈’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기간에 열리는 유서 깊은 시상식. 스위스인이거나 스위스에서 활동하는(정규 취업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래픽·프로덕트·포토·패션 등 7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한국 출신 서체 디자이너가 상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상금은 2만5000스위스프랑(약 4284만원)이다.
그는 “서체 디자인의 심장과도 같은 스위스에서, 스위스 디자이너들끼리 소위 ‘계급장 떼고’ 벌인 경쟁에서 공식 인정받은 것 같아 가장 기쁘다”고 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운동을 주도한 스위스는 ‘서체 디자인의 중심지’로 꼽힌다. 애플 등 세계적인 회사에 기본 글꼴로 사용된 적 있고, 또 미 뉴욕 지하철,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의 서체로 사용된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가 디자인했고,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서체 등으로 쓰이는 ‘프루티거’ 역시 스위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아드리안 프푸티거의 작품이다.
그의 수상작은 대학원 시절 절친한 친구인 중국인 펑 주안준과 함께 개발한 ‘Quirk85’. 1978년 국내 최초의 그룹단위 BI/CI를 제작한 쌍용그룹 디자인 서체 작도(作圖·그림, 설계도, 지도 같은 것을 그리는 것) 규범에서 출발했다. 이 규범을 기반으로 한글·중국어·라틴어(영어)를 통합해 자신만의 서체 디자인을 완성했다. 서체명은 영어 단어 ‘quirky(독특한)’와 ‘quick(빠른)’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글자 유사성을 담았다. ‘85’는 이번 서체 개발에 영향을 준 1980~1990년대의 가운데 해(年) 숫자를 이용했다.


둘이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두 다른 나라에서 자란 디자이너가 마치 거울을 보듯 비슷한 시대상과 환경을 경험했다는 지점. “친구 주안(펑 주안주)이와 자주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가 자랐던 1990~2000년대 국가 경제 성장의 격변기 속 느꼈던 감수성이 너무나도 비슷했어요. 그래서 찾은 게 1980년대 성장 기업을 대변하는 쌍용 서체였어요.”
그를 바탕으로 찾은 1980~90년대 자료는 비현실적으로 초상업적으로 느껴졌다. “최고가 아니면 안 하겠다는 슬로건의 기업 광고, 분초를 다투며 신기술과 편리성을 홍보하는 여러 가전제품, 과로와 음주 같은 직장 문화의 피로를 덜어주는 의약품, 아이를 튼튼하고 빠르게 성장시키는 영양제, 우리 아이가 최고여야 하는 교육 시스템… 이러한 것이 ‘경제 발전’ ‘초고속 성장’을 앞세운 국가적 슬로건 아래 이행됐어요. 그래서 ‘Quirk85’를 특정 기업의 서체로서 정의하기보다는, 동아시아의 ‘기업 아이덴티티’라는 특정적 시대 언어를 표현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시작은 했지만 벽에 부딪힌 적도 많았다. 한글은 서양 서체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어워즈 출품작은 영상 다큐까지 넣어 2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품. “한국인 특유의 (영혼까지) ‘갈아 넣는’ 방식으로 밤낮없이 전력 다해 결국 해낼 수 있었지요.”
그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스위스가 디자인 강국이 된 이유를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아키비스트(기록·문서 보관 담당자)들과 협력하며 과거의 풍부한 디자인 자료를 재(再)해석하는 능력이 월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창의력의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이전까지는 외국 것을 보고 익히는 데 급급해 잊힌 우리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접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는 “한국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역사에 기반한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날 기회는 아직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과거의 훨씬 더 많은 역사 기록과 자료들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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