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탈북민 리포트- 경계는 넘었지만 문턱은 남았다] 2. 경계를 넘던 길 위에서

눈 덮인 밤 그는 말없이 국경을 건넜다. 숨소리조차 삼켜야 했던 순간, 오직 하나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시간을 채웠다. 자유를 향해 내딛은 걸음,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그 일은 탈출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쳐가며 국경을 넘어선 그는 지금 또 다른 문턱 앞에 서 있다.
민족적 빛이 들이침과 동시에 시작된 분단과 이후 80년이라는 시간은 남한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외면을 키웠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돌아갈 수 없다’던 결심은 남한에서의 일상 속에서 가끔 무너진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아직도 먼 여정이 남았다. 우리는 묻는다. 과연 이 땅은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는가.
탈북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가족 네 가지 고통이 얽힌 복합적 선택이었다. 믿기지 않는 과정을 돌고돌아 결국 강원도에 정착한 이들의 그 힘들었던 여정을 되짚었다.
2019년 16살, 앞서 탈북한 어머니 의지로 국경 넘어
발각 위기 넘기고 탈출 남겨진 가족에 걱정·죄책감
15살 소녀, 2008년 친구와 함께 자유 꿈꾸며 중국행
불안정한 신분 탓 정착 실패 후 2015년 남한으로
중국서 태어난 ‘탈북 어머니 아들’ 애매한 지위
문화·생활·언어 차이 고립감 느껴도 지원 사각지대
■ 먼저 도착한 엄마가 부르다
함경북도 출신인 A(22) 씨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6살 나이에 탈북해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거쳐 남한으로 입국했다. A씨가 5살 되던 해인 2007년 어머니가 먼저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다행히도 A씨는 브로커를 통해 탈북한 어머니와 꾸준히 연락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브로커가 북-중 국경과 가까운 양강도 어느 산으로 데려가 핸드폰을 통해 어머니와 통화 연결을 해줬다. 그렇게 쭉 연락을 이어왔지만 딱히 북한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와 헤어져 기억이 잘 안 나고 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삶에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의 탈북은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평소 엄마와 통화연결을 해주던 브로커가 “오늘은 엄마가 국경 가까이에 와 있다”며 함께 가보자고 권했다. A씨는 단순히 엄마를 만나고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 길은 이미 어머니가 계획한 A씨의 탈북 경로였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국경을 넘게 된 것은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아찔한 고비를 수 차례 넘겼다. 브로커 1명과 함께 국경을 넘은 직후 시내로 향하는 길목엔 중국 군의 초소가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기 위해 눈이 자신의 키 만큼 쌓인 산길을 2시간 넘게 걸어 넘었다.
약속된 장소에 차량이 나타나지 않자 브로커는 “산에 누워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차량를 찾아 떠났다. 그렇게 하얀 눈밭에 누운 채로 30분이 지나도 브로커가 오지 않자, A씨는 ‘아, 이제 다 끝났다’는 절망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브로커가 돌아와 중국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사전에 돈을 쥐여 준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다른 탈북민들과 함께 이동하던 중, 기사와 브로커가 중국어로 나눈 대화가 문제였다.
“여기 신분증 없는 사람 몇 명이지?”라는 말에 이 버스 안에 있던 중국인 두 명이 탈북민과 동승한 것을 눈치채고 “공안에 신고하겠다”며 협박했다.
A씨는 이때 말로만 듣던 중국 공안에 잡혀간다면 북에 남은 할머니, 아버지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고, 탈북의 길로 들어서게 한 어머니가 한없이 원망스러워지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결국 이들에게 돈을 건네 입을 막고 나서야 중국 내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 북한 국경을 넘은 지 두 달 만에 남한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 북강원에 날아든 ‘삐라’, 탈북 꿈의 씨앗
2008년 15살이었던 B씨는 어린 나이에 세상과 단절된 북녘 땅을 홀연히 떠났다.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B(32)씨는 이른 나이에 맞벌이 하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북강원도의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군사분계선과 가까워 북한당국에서 틀어주는 라디오의 지직거림 속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혁명가요보다, 우연히 날아든 ‘삐라’ 한 장이 훨씬 또렷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또 북한영화를 통해 본 남한의 카페, 넓은 아파트, 자유롭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 B씨는 어렸지만 그 풍경이 매우 낭만적으로 느껴져 탈북이라는 꿈을 꾸게됐다.
중학생이 돼 함경북도 본가로 돌아왔을 무렵, 친구가 조심스레 속삭였다. “나 중국에 다녀왔어. 다시 가려고” 순간, B씨의 마음은 요동쳤다. 오래된 꿈이 균열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 틈을 타 현실로 번져갔다.
감시가 지금보다 덜하던 시절, 국경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단순히 강을 건넌 것 같았지만, 실은 그때 그녀는 삶 전체를 바꾸는 문턱을 넘고 있었다.
그러나 국경 너머에서의 삶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함께 도강했던 친구와는 금세 헤어졌고, 가진 돈은 금세 바닥났다. 이국의 버스터미널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며 ‘이 사람이 좋은 데 가겠다’는 감에 의지하며 그 사람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 지도도 목적지도 없이, 단지 살아야 한다는 본능 하나로. 그렇게 몇 사람을 따라 몇 개의 역을 거쳐 중국 모 지역에 도착했다. 이후 B씨는 작은 의류 공장에 취직했다. 신분은 무국적자. 그러나 사장님의 호의 덕에 이름 없는 노동자로 6년을 일했다. B씨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돈이 생겼고, 나를 쓸모 있는 존재로 여겨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브로커를 통해 가짜 신분증을 구해 정착하려 했지만, 운명은 늘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신분증을 구하는 일이 틀어졌고 중국 공안에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결국 또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2015년 3월, 또 다른 브로커의 손을 잡고 동남아를 거쳐 남한으로 향했다.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흐려지는 고향에 대한 감정이 뒤엉킨 시간 끝에… 5월, 그는 마침내 남한 하늘 아래 섰다. 탈북한 지 8년 만이었다.
그녀가 넘은 것은 단순한 국경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립된 세계와 자유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소녀와 생존자 사이에 놓인 경계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여전히 ‘문턱’ 위에 서 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아직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 ‘탈북 어머니의 아들’ 무거운 그림자
C(28)씨의 출발점은 북한이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 그의 어머니는 고향을 등지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낯선 중국 땅에서 조선족 남성을 만나 결혼했고, 1997년 C씨가 태어났다. 북한은 그저 어머니의 기억 속 고향 풍경이었을 뿐, 그에게는 아무런 실감도 없는 땅이었다.
시간은 흘러 2010년 어머니가 먼저 남한으로 떠났다. 아버지도 그 뒤를 이었다. C씨만 홀로 중국에 남아 학업을 이어갔다. 길림의 회색 건물과 거친 바람, 그리고 익숙한 골목 냄새가 그의 일상이었다. “중국에서의 삶이 익숙했고, 굳이 한국에 가야 할 이유는 없었어요” 그는 그 시절을 담담히 회상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코로나19는 중국의 거리를 얼려버렸다. 폐쇄된 도시, 침묵만 흐르는 길목. 그 정적 속에서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이젠 와야 한다” 2021년, 그는 중국 조선족이 대학 졸업 후 받을 수 있는 F-4 비자를 신청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탈북민 거치는 국가정보원 조사도, 하나원 교육도 없는 입국 절차였다. 경계는 강이 아니라 비행기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는 인천의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입국 심사대의 차가운 시선, 서류를 넘기는 바스락거림, 낯선 언어가 뒤섞인 공항의 공기. 그리고 경기지역 부모가 사는 집 현관 앞에 섰을 때 그는 알았다. 국경을 넘는 방식이 다를 뿐, 그 역시 또 다른 문턱 앞에 서 있다는 것을…
C씨는 북한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지만, 남한에서 ‘탈북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다닌다.
또 하나원 교육이나 공동체 경험 없이 바로 입국했기 때문에, 남한에서 적응을 돕는 ‘동료 경험자’ 집단이 없다. 즉, 제도적 완충지대 없이 곧바로 현실에 부딪히게 됐다.
그는 “문화, 생활방식, 언어 습관 등이 남한과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때까지의 심리적 거리감은 넘어야 할 무형의 경계일 것이다. 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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