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쓰인 기사들에 대하여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2025. 8. 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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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 배우 구혜선씨.ⓒ연합뉴스

편집국 내근을 할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전화를 건 여성은 한 때 방송인이었으며,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곧 결혼을 준비하는데, 이전에 했던 결혼 기사가 온라인에 남아 있어서 난감하다고 했다. 본인은 과거 유명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지금은 방송 활동도 안 하는 '일반인'인데(본인 표현이었다) 기사를 삭제해 줄 수 없느냐는 얘기였다. 그의 간곡한 어투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졌고, 나 또한 이해 되는 바가 있었다. 편집국에 이야기를 전했을 때, 나 포함 그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의 과거 결혼 사실은 언론이 늘 말하는 '독자의 알 권리'의 영역일까. 그렇게 쓰인 기사 대부분은 독자의 알 권리보다는 기자의 기사 욕심에서 비롯된 일 아닐까.

배우 구혜선이 언론에 일침을 놨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혼 5년'을 늘상 뉴스 헤드라인에 박제하고 낙인찍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올바른 언론 윤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긴 글을 올렸다. 나에겐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로 기억되는 그는, 한동안 이혼을 둘러싼 갈등으로만 다뤄지더니 이후에는 뭘 해도 '이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의 대학원 합격 소식과 학내 문학상 수상 소식은 '이혼 후 겹경사'가 되었고,(<구혜선, 안재현과 이혼 후 겹경사… 정말 기쁜 소식 전했다>, 헤럴드POP, 2월9일) 그가 런칭한 사업 소식에는 '이혼 후 더 잘 나간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구혜선, 이혼 후 더 잘나간다… 특허낸 헤어롤 출시하고 사업가 변신>, OSEN, 4월29일) '이혼'이 사람 이름 앞에 붙는 호 마냥 기사 제목에 따라붙고, 그의 행보는 '이혼이라는 슬픔을 딛고'의 영역 또는 '이혼 후 보란듯이'의 일이 된다. 언론이 '이혼'을 대하는 태도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그걸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새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처럼 '낙인'이 맞다.

비슷하게는 '♥'가 있다.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결혼 사실이 알려진 후, 그에 관한 기사의 제목에는 자주 연인의 이름과 함께 하트 표시가 붙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몇 장엔 <'김태술♥' 박하나, 언제까지 예뻐질까… 결혼하더니 더 청순해졌네>(텐아시아, 8월9일)라는 제목이 붙고,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기사에 <“감사랑합니다”… '이광수♥' 이선빈, 직접 전한 희소식(OSEN, 7월12일)>이라며 아무 관련이 없는 연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드라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다가 실제 두 배우 사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어그로'를 끌 때도 어김없이 하트가 등장한다. ('윤두준♥김슬기, 열애설 없이 결혼 발표? 깜짝 청첩장 공개'(스포티비뉴스, 8월7일) 이러한 일이 수도없이 반복되니 나는 어느새 제목에 하트가 들어간 기사는 클릭하길 멈췄다.

▲ 연예 매체의 일부 기사 제목 갈무리. 챗GPT 일러스트 활용. 디자인=안혜나 기자

연예 기사에서 사람 이름 앞에 습관적으로 붙는 '이혼'이나 하트 표시는 악질적이다. 기사 제목의 '이혼'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 갖는 부정적인 함의를 확대 재생산한다. 하트 또는 누군가의 연인, 혹은 '전 연인'이나 '전 배우자' 같은 호명은 일련의 성취를 망가뜨리려는 의도도 갖는다. 특히나 여성의 역할을 누구의 딸, 아내로 한정시키려던 오랜 가부장제의 습속을 생각해보면 여성에게 붙는 이같은 수식은 더욱 모욕적이다. 직업인으로서의 그의 행보와 업적에 집중하는 대신 '누구의 아내'라는 여성상 보여주기를 무한히 재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전화에, 나는 별 대꾸를 하지 못 했다. 사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편집국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 결국 그 기사를 지우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기사가 쉽게 쓰이는 데 반해, 기사를 지우는 일은 보통 지난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퇴사했다면? 또한 '더 이상 유명하지 않은'이라는 척도는 어떻게 계량할 것이며, 뒤늦게라도 이의를 제기한 당사자의 기사만 지워주는 것도 형평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던 한 통의 전화처럼, 이미 쓰인 기사들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불특정 다수의 건강을 위협하는 내용일 때는 더욱 그렇다. 독립언론 뉴스어디는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무해하다는 내용의 20년 전 홍보 기사가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을 보도했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 인정됐지만… “인체 무해” 언론 보도 여전히 방치>, 2024년 2월23일) 뉴스어디는 각 언론사에 정정보도 등의 조치를 문의했고, 6개 매체 가운데 유일하게 경향신문만 독자에게 사과하며 정정보도를 했다. 3곳은 기사를 삭제하겠다고 회신했으며, 2곳은 무반응이었다.

나에게 그 한 통의 전화와 뉴스어디의 보도는 쉽게 쓰이는 기사들과 그렇게 쓰인 기사들이 살아 숨쉬며 미치는 해악, 이를 돌아보지 않는 행태를 돌아보게 했다. 기사를 쉽게 쓰지 말아야한다고, 이미 쓰인 기사도 다시 보자고 기성 언론 바깥의 사람들은 강력하게 주장하는 데 반해 다만 뉴스룸 안에서만 모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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