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5년이 지났어도 국가 책임은 영원하다

경남도민일보 2025. 8. 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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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15의거 당시, 한의원을 하던 이가 시위 다음 날 연행됐다.

시위 배후와 주모자를 색출하는 경찰에 의해 부인과 같이 오동동 파출소에 연행돼 4월 11일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따라서 국가나 자치단체는 3.15의거 관련자들의 보훈부 유공자 신청과 국가 대상 소송을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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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15의거 당시, 한의원을 하던 이가 시위 다음 날 연행됐다. 시위 배후와 주모자를 색출하는 경찰에 의해 부인과 같이 오동동 파출소에 연행돼 4월 11일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당시 언론 기록을 보면 의거 발생 직후 경찰은 3일간 200여 명을 무단 체포한 것으로 나온다.

고초를 겪은 천모 씨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진상을 밝혀냈다. 천 씨 유족은 이를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인용했다. 물론 천 씨는 직접적인 치료와 신체적 피해, 영업을 하지 못한 소득상의 손해, 주위로부터 받은 사회적 편견까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위자료 성격으로 '통괄 하야' 처리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재판부가 국가 인권유린을 65년이 지났음에도 그 책임을 인정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3.15의거 관련 희생자 가운데 공식기록이 없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당시 언론기록에는 1000여 명이 연행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공식 구금자 문서에는 322명만이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상당수가 구금기록 없이 연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천 씨는 당시 경찰이 구금과정에서 철봉과 장작 등으로 구타하고 고문을 동반한 조사로 허위자백을 받아 검찰로 송치했는데, 검찰은 추가 심문을 통해 경찰의 조사가 문제가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무혐의 처분했다. 천 씨 같은 사례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 이를 증명할 공식기록, 주위 증언, 정황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났고,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현재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신청을 종료한 상황이고, 국가보훈부의 유공자 신청과 재판을 통한 인정을 받기는 사실상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가나 자치단체는 3.15의거 관련자들의 보훈부 유공자 신청과 국가 대상 소송을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헌정질서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보답은 마침표가 없다는 점을 사회 제도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