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가맹점 확장 대신 ‘대전’만 고집 작년 영업이익 대형 프랜차이즈 제쳐 일자리 창출·골목상권 활성화에 한몫 대전의 대표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
6월의 마지막 휴일.
3층으로 된 어느 가게의 지정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했다. 해당 가게는 이런 지정 주차장이 5곳이나 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양손마다 똑같은 빵 포장지가 들려있다. 가게 앞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녹색 우산을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녹색 우산은 가게에서 손님들을 위해 나눠줬다. "예상과는 달리 줄이 그렇게 길지는 않네"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또 다른 줄이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가게 안 풍경은 더 생소했다. '빵 반 사람 반'이다. 빵을 사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가게를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나도 그 유명한 빵을 드디어 샀다"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여기 저기서 빵이 든 포장지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인근 식당과 커피숍 바닥 곳곳에는 빵 포장지가 놓여있다.
대전 '성심당' 본점과 인근 풍경이다.
1967년 성심당 초창기 모습. 사진=성심당
이제는 대전시민의 자부심이자 대전의 문화가 된 성심당은 1956년에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에서 출발했다. 성심당 창업주 고(故) 임길순·한순덕 부부는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으로, 1950년 한국전쟁 중 흥남부두 철수 작전 당시 마지막 피난민을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기적적으로 몸을 실었다.
임길순·한순덕 씨는 잠시 거제도에 머문 뒤 진해(현 창원)에 정착했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기 위해 열차를 탔지만 이들 부부는 운명처럼 '대전'에 멈춰 섰다. 열차가 고장나면서 의도치 않게 대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는 대흥동 성당에서 원조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작은 찐빵집은 노잼(재미없는) 도시 대전을, 빵의 도시로 탈바꿈시킨 지금의 성심당으로 성장했다. 성심당(2001년 로쏘주식회사 법인 설립)은 지역과 상생하며 올해 6월 기준 직원수 1569명(아르바이트 포함), 연 매출 1973억 원(지난해 기준)을 기록하며 대전보다 더 유명한 대전의 빵집이 됐다.
성심당의 인기 덕분에 대전에서는 '대전 빵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9월 28일부터 이틀간 소제동 카페거리와 대동천 일원에서 열린 '2024 대전 빵 축제'에 관람객 14만 명이 방문했다.
지난 6월 29일 대전 성심당 본점에서 빵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심당에서 나눠준 녹색 우산을 쓰고 줄을 서 있다. 인근 거리 역시 인파로 북적였다.
성심당의 위상은 영업이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성심당은 본점을 비롯해 대전컨벤션센터점, 롯데백화점 대전점, 대전역점 등 빵을 전문적으로 파는 4개 매장과 케익부띠크, 삐아또(파스타 전문점), 플라잉팬(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1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뚜레쥬르 등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성심당의 작년 매출액은 1937억 6000만 원으로, 전년(1243억 원) 대비 56%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78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315억 원)보다 50%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022년 154억 원에서 2023년 315억 원으로 늘면서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2023년·214억 원)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작년 CJ푸드빌의 영업이익은 298억 6000만 원으로, 성심당은 영업이익 격차를 더 키웠다. 작년 말 기준 뚜레쥬르의 매장 수는 1300여 곳이다.
이처럼 성심당이 대한민국 제과업계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 우뚝한 선 것은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원칙 고수와 함께 창업주의 '이익이 아닌 나눔' 경영 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취재 둘 째날(6월 30일) 다시 찾은 성심당 본점 내부 모습. 평일 오전이지만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성심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IMF 외환 위기,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 임영진 대표 동생의 가맹사업 실패 등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2005년 1월 설날을 앞두고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폐업 문턱까지 갔지만 임직원 모두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후 성심당은 절치부심하며 연구개발에 몰두했고 기존의 부추빵, 튀김소보로에 안주하지 않고 튀김소보로 고구마 맛, 명란 바게트 등 이색 빵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SNS 이용 증가, 식생활 변화 등이 맞아떨어지며 급성장했다.
성심당은 2013년 롯데백화점 본점의 초청을 받아 일주일간 튀김소보로 등을 판매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에 롯데백화점은 서울 롯데월드몰 입점을 제안했지만, 성심당은 예전 가맹사업 실패의 후유증과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라는 원칙에 따라 대전을 지켰고 그 결과 '대전=성심당'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었다.
성심당의 성장은 원도심인 대전 중구의 발전도 견인했다. 중구 대흥동과 선화동에 있던 대전시청(1999년)·충남도청(2013년)이 이전하면서 공동화 현상을 겪었지만 성심당 본점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주변 상권도 활력을 띠고 있다.
성심당은 69년 동안 나눔의 가치도 실현하고 있다. 성심당 창업주 고 임길순·한순덕 부부는 찐빵집 운영 당시, 그날 팔다 남은 찐빵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고 현재 임영진 대표이사도 부모의 뜻을 이어받아 당일 팔고 남은 빵을 유치원, 노인정 등에 기부하고 있다..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박성순 교수는 "성심당은 독특한 사례"라며 "대형 유명 베이커리의 경우 수익을 위해 확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성심당은 대전에 와야만 살 수 있는 베이커리가 되면서 지역의 희소성이 발생했고, 대전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의 손에는 성심당 봉지가 들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성공적인 마케팅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성심당의 사례를 지역균형발전과 연계하며 "현재 수도권 집중화를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오히려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한 산업의 확장을 도모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희성·정웅교기자
성심당 본점 장기상 차장 "성심당이 곧 제 인생입니다" 고교 실습생으로 첫 인연, 군 제대 후 2013년 재입사
사내 커플로 결혼에 골인 "성심당 지역과 함께 성장"
성심당 대전 본점 장기상 차장.
대전 토박이 장기상 차장(34)은 고등학교 때 성심당과 첫 인연을 맺었다.
2010년 고등학교 실습생으로 1년 동안 성심당에서 근무했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군 입대를 하면서 성심당과의 짧은 첫 인연은 마침표를 찍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기상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시 함께 일하고 싶다" 고등학교 실습 당시 직장 상사의 전화에 기상 씨는 성심당 문을 다시 두드렸다. 면접을 통과한 기상 씨와 성심당과의 두 번째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현재 성심당 본점(대전시 중구 은행동)에서 매장 운영과 인원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기상 씨가 근무하는 본점에는 정직원 43명, 아르바이트생 100명 등 143명이 빵을 만들고 판매하고 있다. 본점에서는 하루 150~200가지 종류의 빵을 쉴 새 없이 만들고 있다. 개수로 치면 2만 개 정도. 엄청난 양이다. 수많은 빵 중 본점에서 가장 팔리는 빵은 바로 '튀김소보로'다. 하루 평균 1만 개가 판매된다. 튀김소보로는 부추빵과 함께 성심당의 시그니처 제품이다.
튀김소보로의 인기 비결에 대해 기상 씨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빵을 착한 가격에 판매하니 인기가 좋은 것 같다. 가성비가 좋다"고 전했다.
현재 튀김소보로는 1개당 1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기상 씨는 "직원들조차 '이 가격에 팔아서 남는 게 있어?'라고 갸우뚱할 정도"라며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성심당의 경영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당일 판매하고 남은 빵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두 기부된다"고 덧붙였다.
빵을 구매하기 위해 전국에서 매일 수많은 고객이 찾는 성심당. 기상 씨는 그중 특별한 손님을 소개했다.
그는 "안면이 있는 손님인데, 대전에 거주하다 일 때문에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며 "어느날 줄을 선 손님 중 한 분이 저를 불러서 봤더니 '그분'이었다. 그분은 '한국에 잠시 왔는데 튀김소보로가 너무 생각이 나서 왔다'고 했다.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상 씨는 성심당이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고등학교 당시 이곳에 왔을 때 상권이 죽어가는 구도심이었다. 성심당이 추구하는 경영이념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이다. 성심당이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이 몰리고, 자연스럽게 상권도 다시 활기를 띠었다. 성심당이 대전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성심당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기상 씨는 성심당에 대해 '자신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라고 설명했다. 아내 역시 성심당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지금은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는 "성심당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존재"라며 "고등학교 때 1년, 제대 후 지금까지 12년 등 총 13년을 근무하고 있다. 아내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한 마디로 성심당이 곧 저의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성심당에 다닌다'고 하면 '오~'하고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말로 회사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기상 씨는 "향토 기업(음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올 수 있게 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1956년 대전역 앞 천막집에서 찐빵을 팔던 성심당은 변함없이 대전을 지키고 있다. 만약 전국에 가맹점을 냈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라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지역과 상생하는 '착한기업'으로 오랫동안 남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