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울산과학고 학생 의대 진학, 이대로 둘 것인가

강정원 논설실장 2025. 8. 1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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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인재 양성의 요람이어야 할 울산과학고등학교가 전국 20개 과학고 중 의·약학계열 진학률 1위라고 한다. 2025학년도 졸업생의 6.7%가 의대로 향해, 전국 과학고 평균 1~2%대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진로 선택 문제를 넘어,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고·영재고 졸업생들이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카이스트(KAIST)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 대신, 의대가 있는 서울 주요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인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기반이 잠식되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다.

  물론 정부와 학교 측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약학계열로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환수하고 추천서를 발급하지 않는 등 강력한 페널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울산과학고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제재는 '고육지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학교의 진학 지도 없이도 개인적으로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페널티를 감수하더라도 의대를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학생 개인의 진로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강제로 특정 진로를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고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특수목적고다.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많은 교육비와 최고의 교육 환경을 지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공학 인재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그 혜택을 모두 누린 뒤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고 의대로 향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의 자유를 넘어 공공의 기대에 대한 배반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이제는 더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문제의 핵심은 의대 진학을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꺼이 과학기술계로 진학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존경받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인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울산과학고와 교육 당국은 '전국 1위 의대 진학률'이라는 오명 앞에서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한다. 학교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입학 단계에서부터 과학 인재로서의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는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