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없는’ 관세협상 뒷이야기…에너지 금액 ‘1500억불’ 오타까지 낸 미국
“美상무부, 1000억→1500억불 잘못 공지해 정정 요청…구체적 서류는 없어”
“농산물 시장 개방 확실히 선 그었다…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도 약속 받아”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세협상의 극적 타결을 이뤄냈지만 세부 내용에서 양국 입장차가 존재해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협상과정에서 타결한 한국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액 수치에 대해 미국이 잘못 보도해 정정한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양국이 관세협상 이후 합의문 등 구체적인 서류를 남기지 않아 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가운데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후속 작업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30일 한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한 후 공식 X(옛 트위터)에 관련 게시글을 올렸다. 당시 해당 글에는 한국이 미국에 투자해야 할 금액은 '3500억 달러(약 490조원)', 미국한테 사들어야 하는 에너지 관련 구매액은 '1500억달러(약 208조원)'이라고 적혔다. 이때 에너지 구매액은 실제 협상 결과인 '1000억달러(약 140조원)'보다 무려 500억 달러나 높게 적시됐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는 미국 상무부 측의 '단순 오타'로, 우리 정부 측이 지적해 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당시 (미국과) 상의하면서 (X에 공지된) 에너지 구매액의 수치가 원래 합의한 숫자가 아니라고 지적했고, 그쪽에서도 고쳐줬다"며 "단순 오타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상무부의 해당 게시글로 국내에선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관련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일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미국 상무부는 미국산 에너지 구매액을 1500억달러로 표현하는 반면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000억달러가 맞는 내용이라고 한다"며 "(양국이) 합의문 처리를 나중에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식으로 하면 국민도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같은 자리에 참석한 김 장관은 "이런 말씀드리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미국 측에서 실수했다고 해서 바로 정정했다"며 "저희가 현장에서 (잘못된 수치를) 확인했고 루트닉 장관도 직접 1000억달러라고 해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해당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투자에 대해선 추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자동차 관세, 우리도 완강했지만 미국 입장 확고했다"
이번 협상은 한미 양국이 합의문을 남기지 않으면서 향후 엇갈린 해석에 따라 혼란이 생길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변덕이 심하다'는 평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의 캐릭터에 따라 문서가 아닌 구두로 합의가 이뤄진 만큼, 미국이 기존 합의와 달리 향후 말을 바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논란이 된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①농산물 개방에 대한 양국 간 엇갈린 입장 ②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혜택의 무력화로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 우려 ③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 패키지에 대한 불확실성 ④반도체, 의약품 등 향후 관세 품목 관련 '최혜국대우' 약속 이행 여부 등이 꼽힌다.
정부 역시 국내적으로 오해 풀어가는 작업에 나섰다. 먼저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에 대해선 "쌀, 소고기, 과일 등 농산물 개방은 이번 협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미국이 요구한 쌀 개방에 대해서도 한국이 추가 개방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협상 당시 해당 논의를 멈췄다고 한다. 아울러 양국이 '미국산 농산물 신규 수입' 승인 절차를 전담할 데스크를 만들기로 한 데 대해 '검역 절차가 생략·간소화된다'는 일각의 해석은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다음으로 '자동차·자동차 부품 25%', '철강·알루미늄·구리 50%' 등 품목관세에 대해선 협상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김 장관은 "자동차 부분에 대해선 저희도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미국 측에서 '자동차 마지노선은 15%다'라는 입장이 너무나 확고했다"며 "협상결과가 아쉽지만 우리 자동차 업계에 대한 협력업체 지원, R&D 지원 등을 통해 2.5%의 갭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패키지' 관련 논란도 해명했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조선협력에 1500억 달러, 반도체, 의약품, 이차전지 에너지 핵심광물 등 경제안보협력 분야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타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이 추가로 대규모 투자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3500억 플러스 알파'의 가능성을 제기해 혼란을 빚었다.
관련해 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재투자의 의미는, 우리나라가 투자하면 그 수익이 다른 나라로 들어가지 않고 미국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 산업별 세부적인 투자 내용에 대해선 "앞으로 추가적인 협상이 진행된다는 정도로만 얼개가 구성돼 있고,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반도체, 의약품 등 향후 관세 품목을 두고는 미국의 확실한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 '다른 나라에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 '다른 나라'의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은 "최혜국 대우는 우리 품목에 대해서 가장 낮은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뜻"이라며 "예를 들면 각 나라별 관세가 다르다면 그중에서 가장 낮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관세협상을 통해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장관은 "이번 협상에서 느낀 점은 한국이 신 보호무역질서라는 '뉴 노멀'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관세협상 타결 이후에도 고관세, 비관세 장벽에 대한 압력이 상시화될 것이라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이 원산지 기준 강화와 함께 경제안보 관련 조치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의 선제적, 적극적인 대응이 더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관세협상의 후속 과제가 산적한 상황 속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대면인 정상회담에서 어떤 협상력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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