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94> 하동 화개 골짜기 능인암을 찾은 17세기 문사 오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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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능인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절에는 승려가 수십 명쯤 있었다.
성천(性天)이라는 승려는 예전 임신년(1632)에 선친께서 이 산을 유람하실 때 운 좋게도 자기가 모시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능인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승려 수십 명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지리산 골짜기의 크지 않은 암자인 능인암에서 어떻게 12종 불서를 간행할 수 있었을까? 불서 간행에는 많은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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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火于能仁寺, 有僧徒數十·중화우능인사, 유승도수십
4일 … 능인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절에는 승려가 수십 명쯤 있었다. … 성천(性天)이라는 승려는 … 예전 임신년(1632)에 선친께서 이 산을 유람하실 때 운 좋게도 자기가 모시고 다녔다고 말했다. 정해년(1647)에 계부께서 이 절에 오셨을 때도 자신이 길 안내하였다고 했다.(初四日 … 中火于能仁寺, 有僧徒數十. … 號性天者 … 言昔在壬申先考之遊此山也, 行而陪隨焉.… 逮乎丁亥, 季父之到此寺也, 亦能前路焉·초사일 … 중화우능인사, 유승도수십. … 호성천자… 언석재임신선고지유차산야, 행이배수언. … 체호정해, 계부지도차사야, 역능전로언)
위 문장은 양곡(陽谷) 오두인(吳斗寅·1624~1689)의 문집인 ‘양곡집’(陽谷集) 권 3의 ‘두류산기(頭流山記)’에 수록돼 있다. 그는 경기도 관찰사·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사이다.
오두인은 1651년 11월 1~6일 진주목사 이상일 등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였다.
11월 4일 아침에 쌍계사를 출발하여 능인사(能仁寺)를 방문한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그는 능인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승려 수십 명이 있었다고 했다.
지리산 화개 골짜기의 목압서사 위쪽인 대성리의 능인암에서는 1603∼1604년에 10종, 1611년에 2종 등 모두 12종의 불서(佛書)를 간행했다. 이때 판각한 목판은 모두 인근 쌍계사로 옮겨져 있다. 부휴 선수(1543~1615)와 벽암 각성(1575~1660)이 불서 간행을 주도하였다.
그러면 지리산 골짜기의 크지 않은 암자인 능인암에서 어떻게 12종 불서를 간행할 수 있었을까? 불서 간행에는 많은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만 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임진왜란·정유재란 양란으로 피해를 본 이 지역에 불서를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이 일은 부휴 선수의 영향력 아래 있던 송광사와 화개골 신흥사(현 왕성초등학교)의 지원을 통해 완수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엊그제 필자는 능인암 터를 방문했다. 18세기 후반부터의 기록에는 능인암이 폐사되고 터만 남았다고 돼 있다. 현재 쌍계사는 능인암의 경판을 포함해 국내 사찰 중에서는 해인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경판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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