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 아닌, ‘임산부 벨트’를 시민에게 [세상읽기]

한겨레 2025. 8. 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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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클럽 사회적협동조합 남승제 대표가 지난해 2월 리박스쿨 등이 참여한 함께행봉교육봉사단 창립 출범식에 참여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영상 화면 갈무리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또렷이 기억난다. “여자는 찬 데 앉으면 안 된다.” 초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여자, 찬 데, 앉다, 안 된다, 네 단어가 왜 붙어 있는지 싶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강사는 ‘말 안 해도 알지?’ 하는 눈빛을 보냈다. 문제는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조심해야 한다, 보호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로 끝나는 것이었다. 신나고 재밌다면 ‘네!’라고 속 시원히 답했을 텐데 아니었다. 어딘지 위축되고 내 몸이 수치스럽고 질문도 목소리도 쉽게 안 나왔다.

‘아기를 낳을 몸’이므로 생식기와 자궁이 따뜻해야 하고, 다리를 붙이고 다니고, 옷을 여며야 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건너뛴다고? 체육 시간에 뜀틀 구르기가 안 돼 걱정이고, 주말에 시내 간다는 친구들과 화장은 어떻게 한다는 건지 긴장되고, 생리대도 혼자 사야 하고, 청소 시간에 비밀 얘기가 매일 쌓이는데 갑자기 내 몸을 미래로 타임슬립 한다고? 와닿지도 않고 옳지도 않았다. “아기를 낳을 몸.” 강사는 공기 반 소리 반 아름답게 발음했지만, 세상은 생명을 환영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여자 몸을 품평하고, 장애인에 대해 수근거리거나 불편해했고, 노동하는 사람은 열악하고 아팠다. ‘엄마’는 고귀한가? 엄마는 친구들 수만큼 다양했고, 다양한 게 세상이었다. 그 성교육은 이런 현실을 무시했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 시내 6곳 청소년성문화센터를 하나의 법인으로 모은 뒤, 운영 위탁처를 공모했다. ‘넥스트클럽’도 공모에 지원했다. 넥스트클럽은 ‘성경적 성교육’과 ‘성품 성교육’을 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다. 이장우 대전시장이 당선된 뒤 대전시청소년성문화센터를 위탁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정보공개 청구한 2022년 11월23일 대전시청소년성문화센터 심사 회의록에서 심사관은 “대표님이 수탁을 하게 된다면 기존 기관과의 차별성과 강점은?”이라고 물었다. 넥스트클럽은 답했다. “저희는 어머님의 마음으로 내적 인프라를 가지고 교육할 것임.” 남승제 넥스트클럽 대표는 지난해 2월 봉사단 창단식에서 “성교육은 가족중심주의여야 한다”고 발언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족중심주의로? 960만명이 사는 세계 도시에서 30~40년 전 보수주의 성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 서울시는 8월13일 심사를 앞두고 있다.

‘가족중심주의’는 몸과 성에 대해 차별, 이분법, 폭력을 낳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피해 상담 중 15%는 매년 가족 성폭력이다. 친부였던 가해자는 “내가 번 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윽박지르며 성폭력을 자행했다. 남성 부양자 모델이라는 가족구조를 폭력 정당화 도구로 삼은 거다. 전·현 배우자에 의한 폭력도 ‘가족중심주의’가 말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가족은 사적 세계이고, 성과 재생산은 사적 영역이며 가정 내 여성이 관할하는 거라는 도식이 성차별이다.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가족의 성(性)을 벗어나 시민권으로 확립된 게 성문화센터라는 공공 인프라가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운영하겠다고?

성경적 성교육의 다른 이름인 성품 성교육은 “성에 대한 혼란과 일탈을 줄이고, 엘리트로 성장시키라”고 광고한다. 혼란과 일탈은 누구의 시선인가? 누구에게 어떻게 줄이라고 제안하는 것인가? 혼란과 일탈 없는 성장을 시킬 수 있다는 교육을 홍보하는 것은 청소년을 가정 내로 포섭하고, ‘엄마’ 역할을 호출하며, 성교육을 사교육화한다. 성교육을 엄마의 일로 만드는 것은 성교육이 아니라 성차별주의다.

서울시는 얼마 전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 매뉴얼을 바꾸어 ‘체험관’ 용어를 금지했다. 체험형 성교육은 공간과 도구를 활용해 몸으로 지식을 감각하고, 질문을 가지고 토론하며 생각해보게 하는 교육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성교육이 바뀐 기점, 청소년들이 참여하게 된 기점이 바로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체험형 성교육의 시작이었다. 대표적으로 임산부 벨트가 있다. 임신 7~8개월 된 임신부의 가슴과 배를 체험하도록 10㎏ 중량으로 만든 조끼인데 누구든 입어볼 수 있다. 입자마자 ‘아하!’ 하며 오만 생각이 스친다. 임산부 벨트는 ‘엄마’라는 규범을 강요하지 않고, 신체 변화를 겪는 한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임산부 배려석’과 ‘맘충’ 멸칭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는 가족중심주의, 이분법적 성역할 규범을 멈춰야 한다. 성문화센터의 포괄적 성교육과 체험형 성교육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 서울시는 성교육받을 시민의 권리를 빼앗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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